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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역사 1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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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의 길, 도로 변천의 역사

고양시의 길, 도로 변천의 역사

오늘은 고양시의 길, 도로의 변천 역사에 대해 알아 봅니다. 1. 한강, 행주수로 (물길) 우리시에서 가장 오래된 길 입니다. 삼국시대 백제초기 부터 이용된 물길 입니다. 서해, 강화도, 파주를 지나, 우리 고양시를 거쳐 현재의 풍납토성이 있는 한성 백제로 연결되던 길 입니다. 광개토대왕 (호태왕)이 백제를 공격했을 때 사용한 물길 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까지도 사용하다가 1930년대 한강에 제방이 생기면서 물길의 기능이 크게 약화 됩니다 2. 의주길 (연행로) 의주길은 고양시의 육로 중 가장 오래된 큰 길 입니다. 파주의 혜음령을 넘어 고양동, 대자동, 신원동, 삼송동, 동산동을 경유하는 길 입니다. 관서대로, 중국 연경을 간다고 하여 연행로, 의주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중국을 오가던 사신행렬, 임진왜란 당시의 피난길, 병자호란시 수십만명이 끌려간 아픈 역사의 길 등, 우리의 영욕의 역사가 담겨진 길 입니다. 3. 경의선 철도 1906년 일본인들이 만주침략과 우리나라의 자원과 물자를 수탙하기 위해 개통한 철도 입니다. 출발은 서울 용산역, 종착은 평안북도 신의주 였지요. 이 철길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무대임과 동시에 일본인들에 의해 우리의 위안부, 강제징용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곳 입니다. 6,25전쟁 당시에는 수많은 피난민이 이용했으며 현재는 전철이 운영되고 있지요.. 이 경의선의 개통으로 고양동 중심의 고양 역사가 일산역 중심으로 이동되면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일산 5일장 입니다. 4. 1번국도 통일로 1920년대 일본인들은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관동군에게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새로운 도로로 통일로를 확장합니다. 당시에 고양군 사람들은 이 도로를 신작로, 또는 행길, 이라고 불렀지요. 비포장 도로로 주로 고양지역의 동쪽 주민들이 서울 영천장 (독립문 부근)에 물건을 파는 길로 이용되었습니다. 이후 1970년대 남북한의 7.4 남북 공동성명등으로 남북한의 대표자가 오고 가면서 도로가 포장되고 주변의 여러마을이 선전가옥으로 개조하게 됩니다. 5. 자유로와 3호선 전철의 개통 1989년 일산신도시의 개발 발표와 고양지역의 신도시 개발로 한강 제방위로는 새로운 도로 자유로가 만들어 집니다. 고양지역의 오지인 신평리, 장항리, 주엽리, 법곶리, 대화리, 구산리 등이 개발되는 결정적인 단초를 만들게 됩니다. 남북한의 교류가 통일로에서 자유로로 바뀝니다. 전철도 개통 됩니다. 지축역 부터 대화역까지 고양시지역에는 최초의 지하철이 연결된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당초에 계획에 없던 원당을 경유하게 되었습니다. 6. 미래의 고양시 길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개성, 평양, 신의주, 중국으로 연결되는 최첨단의 철도 수단 KTX가 출발하는 곳이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행신역이 됩니다. 이미 준비되어 있구여 시속 400km로 달릴 수 있는 신형 고속철도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개성까지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창 공사중인 서울과 문산사이의 고속도로도 미래 우리시의 중요한 교통수단(길)이 됩니다. 우리시의 정 중앙인 원당역 부근을 통해 우리시의 남북을 가로 지르는 큰 도로 입니다.        
눈이 오면 아름다운 곳, 고양의 설경을 추천합니다.

눈이 오면 아름다운 곳, 고양의 설경을 추천합니다.

오늘 고양시에 많은 눈이 내렸는데요, 우리시에도 설경 이쁜 곳이 몇 곳 있어서 추천 합니다. 1. 서오릉 익릉과 주변의 소나무 (소나무위의 눈과 정자각, 왕릉의 조화) 2. 일산 밤가시 초가 지붕과 봉당의 어울림 (정발산동 밤가시 초가의 지붕에 쌓인 설경) 3. 북한산 백운대의 눈꽃 설화 (백운봉 암문에서 백운대에 이르는 구간의 나무 설화) 4, 고양 일산 호수 공원, 전통공원의 기와정자, 초가지붕, 연못과 눈의 어울림 5, 흥국사 약사전에서 보는 북한산 설경 ( 약사전 뒷편 영상쉼터에서 보이는 설경) 6, 행주동 시정 연수원 앞 한강에 내리는 폭설 설경 (한강물에 떨어지는 눈과 희미한 저녁 낙조) 7. 천연 기념물 송포 백송에 조용히 내려 앉은 눈 (나무와 줄기, 잎까지 하얀 설경 모습) 8. 북한산 의상봉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산 주봉의 설경 (20여개의 봉우리에 쌓인 모습, 바위와 설경의 어울림) 흔히 팔경 (八景)을 이야기 하곤 하는데, 위의 8곳을 고양팔경이라고 불러보고자합니다.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지명들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지명들

우리가 잘못 알고 사용하는 지명들이 많습니다. 마을버스 정류장, 지도, 도로표지판,  이정표 등에 잘못 표기되어 있습니다. 몇가지만 살펴 보겠습니다. 1. 주교동 박제궁.  박재궁이 맞습니다 (밀양박씨의 재실이 있다는 뜻 이죠) 2. 성사동 쇠기 (쇄기) 마을,  정확히는 수역이 마을 입니다. (물이 많은 곳 이라는 의미 입니다.) 3. 고양동 계명산 , 사실은 개명산(開明山) 입니다. 산이 높아 아침을 밝힌다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4. 곡릉천 . 사실은 공릉천이 맞습니다.  (파주 삼릉에 있는 공릉의 이름을 딴 명칭 입니다) 5. 번달, 현달산이라 부르고 있으나 , 정확히는 견달산(見達山) 입니다. 6. 고양동 되박고개.. 정확하게는 퇴패고개 입니다. 7. 삼송동 숯돌고개 ,, 정확히는 숫돌고개 입니다. 8. 법곳동 ... 정확하게는 법곶동 (法串洞) 입니다. 9. 신원동 세원마을... 정확히는 새원마을이 맞습니다. 10.성사동 국수봉 (성라산)... 일부 주민들이 덕양구 성라산의 봉우리를 국수봉 이라 부르고 있으나 명확히는 국사봉 (國祀峰)이 맞습니다. 11. 원당중 식사동 사이의 고개는 구학제... 정확한 명칭은 구학 (九鶴)재 입니다 12. 덕이동 로데오 거리가 있는 할미마을 ..... 정확하게는 한뫼마을 입니다. 13. 삼송동 달걀부리 마을 ... 정확히는 달걀뿌리가  맞습니다. 14. 일산동구 풍동 애니골 .... 정확히는 애현골(愛峴谷) 입니다. 15. 덕양구 창릉동 앵봉 ,,, 정확하게는 매봉 (응봉)이 맞습니다. 애니골과 같이 고착화된 이름은 이미 고치기 어렵게 되었으나 그 정확한 어원은 알았으면 좋을 듯 합니다.
서울-문산 민자고속도로 공사 구간 내 도내동 구석기 유적 발견

서울-문산 민자고속도로 공사 구간 내 도내동 구석기 유적 발견

□ 발굴개요 - 조사명 : 서울~문산 민자고속도로 사업구간 내 문화재발굴조사 - 조사지역 :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 출토유물 : 구석기 돌도끼 및 화살촉 등 8,000~15,000점 예상   서울~문산 민자고속도로 공사 구간 내 관련 법률에 따라 사전 시행한 발굴조사에서 <도내동 구석기 유적>이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전문가 회의 결과 연천 전곡리, 파주 운정 지구와 같은 7만 년 전 중기 구석기 유적으로 보이며, 한반도 최초의 석기 제작 및 채석 장소로 추정됩니다. 유물의 종류는 몸돌, 격지 등 석기제작과 관련된 유물이 대부분이며, 현재 수습한 유물들을 정리중이며 앞으로 본 유적의 석기양상과 형성시기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역사문화 교육공간으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행주산성 한강가에 있는 동굴

행주산성 한강가에 있는 동굴

우리시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 남서쪽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있지요 일명 행주 웃경주 동굴 입니다. 이 동굴은 천연 바위 절벽에 뚫린 동굴 입니다. 한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에 의하면 예전에는 이 동굴에 잡은 고기를 보관했다고 합니다. 워낙 숲에 둘러쌓여 있어 겨울철 한철에만 찾을 수 있는 동굴 입니다. 올 가을에 들어가 본 결과, 지하로 들어갔다가 다시 평지 직진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8m 정도 들어 갔는데 너구리 한마리가 죽어 있고 벌레가 있더군요 더 들어가니 굴의 일부가 무너져 있어 진입이 불가능 해서 10m 지점에서 나왔지요. 내년에는 국비를 지원받아 이 동굴에 대한 탐사와 발굴이 진행될 예정 입니다. 좀 깊이가 길고, 선사시대의 벽화, 구석기 인들의 유물, 동물 뼈, 사람뼈  등이 발굴되었으면 합니다.
신비의 대자산 호랑이 동굴 이야기

신비의 대자산 호랑이 동굴 이야기

우리시에도 광명동굴과 같이 개발 가능성이 있는 덕양구 대자산 호랑이 굴이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으나 몇일 전 마음 단단히 먹고 랜턴 들고 그 깊이를 알고 싶어 깊숙히 들어가 보았습니다.  입구는 좁아서 겨우 앉자서 들어갔고 약 10m 지점에서는 서도 될 정도로 높고 넓었습니다.  그리고 좌측으로 동굴을 따라 들어가면 15m 지점에서 아주 좁은 통로가 있습니다. 평범한 성인 남성 몸으로는 더이상 들어가기 불가능 할 정도로 좁습니다. 고양시에서 확인해보니 좁은 구역만 통과 하면 좌우로 넓은 통로가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 했습니다. 돌을 던져 봐도 공간이 있고 물소리도 들리고 박쥐가 서식하고 있는 것도 확인 했습니다. 확신 하건데 고양지역에서 제일 큰 동굴 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현재 그 누구도 이 동굴의 끝까지 가본 사람은 없습니다. 고양동 주민들은 이곳을 호랑이가 살던 곳이라 하여 호랑이 굴 이라 부릅니다. 6,25전쟁 당시에는 미군들이 이곳에 와서 많은 낙서를 남겨두어 지금도 현장에 남아 있습니다. 지역 어르신들에 의하면 행주산성까지 연결되었다고 증언하시는데 실효성은 적지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얼마전까지 군사시설 보호구역 내에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입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정과 망치를 들고 가서 입구를 넓혀 반드시 호랑이굴의 정체를 밝히고 싶습니다. 보기에는 길이가 100m 이상인 것은 거의 틀림 없는 듯 합니다. 행주산성에도 굴이 있어 들어가 보았는데 이 대자산 호랑이굴과 연결되었으면 합니다.
고양의 구석기 - 4 (고양 덕이동 유적)

고양의 구석기 - 4 (고양 덕이동 유적)

유적명 : 고양 덕이동 구석기유적 조사기관 : ()경기문화재연구원 발굴기간 : 200647~ 121 유적, 유물 조사결과 - 발굴조사 결과, 1 지점에서 두 개의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밝혀졌고, 몸돌, 격지, 찍개, 긁개, 여러면석기 등 214점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   지표와 표토 및 교란층에서 8점이 추가로 수습되어 전체 222점이 출토되었다. 1 문화층은 표토 아래 약 30~50cm의 깊이에 퇴적된 암갈색 찰흙층에서   확인되었고, 이 지층의 퇴적토로 측정된 OSL연대는 BC 32,000 ± 3,200년이다. 2 문화층은 표토 아래 약 50~80cm의 깊이에 퇴적된 갈색 찰흙층에서   확인되었다. 해발 7.5~8.2m에 분포하며 측정된 OSL연대는 BC 52,000 ± 3,200년이 다. 시기는 중기구석기의 늦은 시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문화 층과 2 문화층에서 출토된 석기는 각가 107점으로 같다. 출토된 석기의 종류로는 몸돌, 격지, 조각, 찌르개, 긁개, 흠날 등 이다. 고양 덕이동 구석기유적은 경기 서북부 일대의 구석기시대를 연 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주변에 자리한 파주 운정 택지 개발지구 내 구석기유적들과 김포시 장기동, 김포시 고촌 신곡리 등 김포 일대의 구석기유적들과 지층, 석기의 돌감, 문화층의 위치 등이 매우 흡사하게 나타난다.     (찌르개 - 사진출처 경기문화재단 보고서)   (긁개 - 사진출처 경기문화재단 보고서)    
고양의 구석기 - 3 (고양 신원.원흥동 유적)

고양의 구석기 - 3 (고양 신원.원흥동 유적)

 유적명 : 고양 신원동·원흥동 유적 조사기관 : ()한국선사문화연구원 발굴기간 : 200796~ 1031 유적, 유물 조사결과 - 고양 신원동·원흥동 지구에서는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4개 지점의 지표 및 고토양층에서 구석기유물이 출토되었다. 지점별 퇴적양상은 기반암 풍화토 위로 3~5개의 퇴적층이 확인되며, 기반암풍화토- 적갈색 점토층-암갈색 점토층-표토층으로 이루어진 양상을 보이며, 곳에 따라 기반암 풍화토와 적갈색 점토층 사이에 암갈색·진갈 색사 질점토층의 분포양상을 보인다. 4지점 모두 상부 사면에서 운반된 퇴적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성시기는 적갈색토층보다 더 하부에 분포하므로 아간빙기 혹은 그 이전으로 보이며, 6~4.5만 년 전의 중기구석기에 속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몸돌 - 사진출처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보고서)   (찍개 - 사진출처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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