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옛날옛적 설화 : 고양 밥 할머니 ]

#STORY 02. 고양 밥 할머니 (북한산 정경부인 오 씨 이야기)
고양 밥 할머니

반만년의 역사 동안 우리나라는 외부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당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처럼 작은 나라가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금껏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나라의 위기 때마다 지혜를 발휘해 역경을 이겨내도록 도운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현명한 선조 중에는 꼭 훌륭한 왕이나 용맹한 장수도 있었던 것은 아니랍니다. 때로는 평범한 우리 이웃 같은 백성들이 나라를 구하기도 했지요.

‘밥 할머니’라 불리기도 하는 ‘북한산 정경부인 이야기’는 바로 그렇게 나라를 구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불광동(현재 연천마을)에 살고 있던 오 씨 부인입니다. 오 씨 부인은 지혜롭고 현명해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어요. 워낙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해 무슨 문제든 척척 해결해내는 그녀를 마을 사람들은 ‘오 선비’라고 불렀어요.

이야기가 시작되던 그때, 나라는 전쟁에 휩싸여 있었어요. 선조 25년(1592년), 당시 조선과 명나라의 땅을 탐낸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죠. 1592년을 ‘임진년’이라고 하는데, 임진년에 일어난 ‘왜(일본)’와의 전쟁이라는 뜻에서 ‘임진왜란’이라고 한답니다.

 

이듬해인 1593년에는 오 씨 부인이 살던 마을도 전쟁의 피해를 입었어요. 안타깝게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왜군에 밀려 거듭 후퇴했고, 그러다 보니 왜군이 북한산 자락에 있는, 오 씨 부인의 마을까지 올라오게 된 거지요. 왜군은 북한산 자락에 있는 창릉천에 진지를 치고 머물렀어요. 조선과 명나라의 병사들은 북한산에 갇힌 채,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가고 있었지요. 다친 병사가 많았지만 치료는커녕 끼니도 잇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오 씨 부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우리 병사들이 굶고 있다니, 내가 뭔가를 해야겠어. 왜군들에게 이 마을이 짓밟히는 꼴을 더 이상은 볼 수 없어!”

오 씨 부인은 병사들을 위해 창고의 쌀을 꺼내 주먹밥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주먹밥을 바구니 가득 담아 왜군의 눈을 피해 북한산에 올랐어요. 깊은 밤에 산을 올라본 적이 있나요?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어두운 산길을 걷다 보면 나무 위에서, 바위 뒤에서 무서운 산짐승이나 귀신이 나타날 것만 같아 여간 무서운 게 아니랍니다.그래서 어지간한 남자들도 겁을 집어먹기 쉽지요. 더구나 왜군에게 들키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어요. 그런데도 오 씨 부인은 그 무서운 일을 해낸 거예요! 그렇게 오 씨 부인이 목숨을 걸고 전해 준 주먹밥은 며칠 동안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굶주렸던 병사들에게 생명줄과도 같았답니다.

“저는 아랫마을에 사는 오 씨라 하옵니다. 장군님을 뵙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병사들이 주먹밥을 먹는 동안, 오 씨 부인은 병사를 이끌고 있던 장군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자신에게 왜군을 무찌르고 무사히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오 씨 부인의 이야기를 들은 장군들은 모두 그 지혜에 탄복했다고 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에 오 씨 부인은 산을 내려갔습니다. 다음 날부터 조선의 병사들은 밤마다 북한산의 봉우리 중 하나인 노적봉을 볏짚으로 감쌌어요. 오 씨 부인과 마을 사람들은 왜군 몰래 병사들에게 볏짚과 음식을 전해줬지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 노적봉이 거의 볏짚으로 가려지자, 오 씨 부인은 빈 광주리 하나를 들고 북한산에 올랐어요. 이번에는 왜군을 피해 밤에 오른 것이 아니라 환한 대낮에 올랐답니다. 평범한 아낙이 산에 오르는 것까지 막을 이유는 없었으니 왜군들도 신경 쓰지 않았지요.

하지만 산에 올랐던 오 씨 부인이 다시 내려올 때, 왜군들은 그녀를 막아섰습니다. 산에 오를 때는 빈 광주리를 들고 갔던 오 씨 부인이 내려올 때는 광주리 가득 흰 쌀을 담아 온 거지요.

“넌 누구냐? 그리고 그건 웬 쌀이지? 사실대로 말하라!” “저는 요 아랫마을에 사는 아낙입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산속에서 병사들이 쌀을 나누어준다고 해서 받아 오는 길입니다.” “그게 사실이냐? 조선군에게 쌀이 남아 있다고?” “남아 있다 뿐이겠습니까? 내 살다 살다 그렇게 많은 쌀이 쌓여 있는 건 처음 봤지 뭐예요?”

오 씨 부인의 말을 들은 왜군들의 눈에도 저 멀리 곡식 더미가 쌓여 있는 것이 보였어요. 물론 그건 진짜 곡식 더미가 아니라, 오 씨 부인의 말에 따라서 병사들이 볏짚으로 가려둔 노적봉이었지요.하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정말 곡식 더미처럼 보였답니다. 때마침 평소에 맑았던 창릉천에 뿌연 물이 흘러왔어요. 그걸 본 오 씨 부인은 왜군들에게 그 뿌연 물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보세요. 저 많은 병사들이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으니 이렇게 뿌연 물이 흘러 오는 것 아니겠어요?”

고양밥할머니석상 (고려시대)

고양 밥 할머니 석상 (고려시대)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모퉁이공원

(고양시에 있는 유일한 석불로 석상의 머리부분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훼손되었습니다. 훼손된 석상의 머리부분은 새로 만들면 마을에 좋지 않는 일이 생긴다고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산속에서는 연기까지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그걸 본 왜군들은 정말로 조선군이 밥을 짓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지요. 그 모습에 왜군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왜군들도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자신들보다 더 힘들 거라 생각했던 적군에 쌀이 넘쳐난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충격이 컸던 거지요. 왜군들은 어찌나 굶주렸던지, 쌀을 씻은 물이라도 마시겠다고 달려들어 뿌연 물을 마구 들이켰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들은 모두 배를 움켜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어요. 왜군이 들이마신 뿌연 물은 쌀을 씻은 물이 아니라, 사실은 석회를 뿌린 물이었거든요. 그리고 왜군들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공격을 해왔고, 손쉽게 왜군을 물리쳤답니다. 이 모든 것이 오 씨 부인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이었던 거지요. 이때의 활약으로 오 씨 부인은 ‘밥 할머니’라는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이후로도 오 씨 부인은 전쟁이 날 때마다 배고픈 병사들에게 밥을 지어서 먹이고, 부상을 치료해 줬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대장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한 오 씨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선조는 그녀를 ‘정경부인’이라는 칭호를 내렸어요. 그리고 노적봉이 잘 보이는 곳에 그녀를 기리는 석상을 세웠습니다.바로, 지금의 창릉 모퉁이공원에 있는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46호인 ‘밥 할머니 석상’이 선조가 세운 오 씨 부인의 석상이랍니다.

오 씨 부인의 타인을 위하는 마음과 희생정신은 오직 자신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본받아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