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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옛적 설화 : 효자 박태성 ]

#STORY 04. 효자 박태성
효자 박태성

조선 말, 한양 인근에 효심이 지극하기로 유명한 박태성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얼마나 효자였는지, 한양 근방 주민들 중 박태성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요.

세월이 흘러, 박태성의 아버지인 박세걸이 병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무덤옆에 막을 짓고 3년간 사는 걸 시묘(侍墓)라고 하는데, 박태성은 아버지의 장례 후 시묘(侍墓)를 했다고 해요. 뿐만 아니라, 시묘 이후로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문안을 드리고자 아버지의 묘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묘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무악재 박석고개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한 인왕산 호랑이가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냥꾼들도 오르기를 꺼리는 곳이었지만, 박태성은 아버지의 묘를 찾아 매일 오르내렸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도 아버지의 묘를 찾아가던 박태성 앞에 그 유명한 인왕산 호랑이가 나타났어요. 호랑이는 박태성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꾸짖었습니다.

 

“네 이놈! 너는 아직도 나의 이름을 듣지 못하였느냐!”

이에 박태성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용기를 내 말했습니다.

“호랑이님의 명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숨이 아무리 중하다 해도 자식 된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콧방귀를 끼고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습니다.

“나는 지금 무척 배가 고프니 너를 잡아먹겠다.”

그러자 박태성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그 모습을 본 호랑이는 박태성을 비웃었습니다.

“제법 용감한 놈인 줄 알았더니 한심하게도 눈물을 흘리다니, 죽음이 그토록 두렵더냐!”

박태성은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죽으면 더 이상 아버지께 문안인사를 올리지 못할 테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호랑이는 박태성의 깊은 효심에 감동했습니다. 자신을 보고 벌벌 떨면서 우는 사람을 많이 봐왔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목숨이 아까워서 울었던 거였어요.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도 효심을 잃지 않는 박태성의 모습에 감탄한 것이지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봐왔지만, 너처럼 효심이 깊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타거라. 네 아버지의 묘까지 데려다 주겠노라.”

그러면서 박태성 앞에 넙죽 엎드리는 것 아니겠어요? 박태성은 깜짝 놀랐지만, 우선은 호랑이가 시키는 대로 등에 올라탔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쏜살같이 달려 정말로 박태성을 아버지의 묘 앞까지 데려다 줬어요. 그날 이후로도 호랑이는 매일 무악재 고개에서 기다리다가 박태성을 아버지의 묘 앞까지 태워줬습니다.

효자동 박태성 정려비 및 묘

효자동 박태성 정려비 및 묘

시간이 흐르고 흘러, 박태성과 호랑이가 처음으로 만난 지도 어느덧 40년이 지났어요. 박태성도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박태성은 아버지의 묘 옆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박태성의 묘 앞에서 숨을 거둔 호랑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40년간 박태성과 우정을 쌓아온 바로 그 인왕산 호랑이였지요. 사람들은 박태성과 호랑이의 우정에 깊이 감동했어요. 그래서 호랑이를 박태성의 무덤 옆에 묻어주었답니다.

효심이 지극했던 박태성과 이에 감동한 인왕산 호랑이의 우정 이야기는 현재 덕양구에 있는 효자동의 유래가 됐어요. 지금도 북한산 아래쪽인 고양시 제청말 마을에는 박태성과 그 아버지인 박세걸, 그리고 인왕산 호랑이의 묘가 함께 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던 무시무시한 호랑이마저 감동하게 만든 박태성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