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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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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관지

고려시대부터 서울과 개성, 평양, 의주, 중국으로 연결된 의주길에 위치한 객관 (客館)고양시 고양동에 있는데 조선조 후기까지 건물이 남아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일제에 의해 그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현재는 주춧돌과 받침돌 등 그 터만 남아 있다.조선왕조 실록 등에 벽제, 벽제관 등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국외의 손님들을 모시는 객관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중국에서 오는 사신은 물론, 왕의 행차 시 등에 사용되었다. 벽제관에 있던 육각정은 일본인들에 해 일본으로 밀반출되어 고양시 등에 의해 환수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벽제관에 관한 사진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당시에 촬영된 것으로 20여장이 남아 있으며 고양시에서도 문화재 복원 (재현)이 추진되고 있다.

벽제관지

벽제관지

벽제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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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각정

벽제관에 있던 육각정은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밀반출되어 고양시 등에 의해 환수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벽제관에 관한 사진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당시에 촬영된 것으로 20여장이 남아 있으며 고양시에서도 문화재 복원(재현)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육각정

육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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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골

나무의 나이 500년이나 됩니다. 향교골 은행나무는 고양시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로 고양동의 상징나무가 되고 있는데 고양동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해 있습니다. 290년간 고양동에 군청이 있었는데 당시 고양군수가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이 은행나무를 자세히 보면 두 그루입니다. 하나의 나무가 아닌 두 그루가 합쳐져 하나의 나무로 보이고 자세히 보면 두 개의 가지로 되어 있어요. 왼쪽 은행나무는 숫 나무로 은행이 열리지 않고, 오른쪽 나무는 은행이 열리는 암나무입니다. 나무의 밑둥이 굵고 전체 모습이 웅장하여 실제로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향교골

향교골

향교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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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향교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교육 기관입니다. 멀리서 향교를 보면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그리고 대자산 줄기와 어우러져 한옥의 멋과 함께 건물 뒤편에서는 북한산이 조망되는 명당에 자리해 있죠. 고양향교는 서기 1398년 고양문묘라 하여 처음 지어졌고, 한국전쟁 등으로 크게 훼손된 것을 복원하여 현재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향교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이어서 삼문, 고양군수 조중춘 공덕비, 명륜당, 동재, 서재, 전사청, 대성전, 동무, 서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향교에서는 매년 음력 8월 27일 공자님 탄신을 맞아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향교는 크게 제례의 기능, 교육의 기능, 향촌교화의 기능 등이 있으며 일제 강점기 이후 폐교되어 현재는 제례 위주의 기능이 강하게 전수되고 있고 최근 향교와 놀자 등 향교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양향교

고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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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동 호랑이 굴

고양시 고양동 대자산 기슭에 자리한 천연 동굴이 있습니다.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이 동굴은 고양동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데 6,25 전쟁 당시 마을 주민들이 피난와서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 동굴을 이용하여 고양의 의병이 활동했다고 합니다. 입구는 1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으나 약 10m 정도 들어가면 10여명이 들어갈 정도로 넓은 곳이 나옵니다. 좌측으로 통로가 있는데 깊이는 들어가본 사람이 없어 아직 그 속을 알 수 없습니다. 마을의 주민들은 이 동굴이 행주산성의 동굴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아주 옛날부터 전해 왔는데요 동굴입구에는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페인트 등으로 쓴 낙서가 남아 있구요. 김신조 무장 공비 사건 후 간첩의 은신처가 될 수 있다고 하여 폐쇄하여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으나 의주누리길이 만들어 지면서 이 구간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고양동 호랑이 굴

고양동 호랑이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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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산

대자산은 해발 213m로 고양동과 대자동 경계에 자리한 이지역의 주산입니다. 산 정상에서는 북한산의 주봉들을 관망할 수 있으며 고양동 누리길이 정상을 관통합니다. 대자라는 이름은 조선조 태종의 4번째 대군인 성령대군이 어린나이에 돌아가자 그의 원찰로 대자사가 지어지면서 생긴 이름입니다. 일제강점기 3.1운동 당시에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서 만세 운동을 벌였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죠 산 기슭에는 고양향교, 최영장군 묘소, 성령대군 묘소, 경안군 묘소 , 근령군 묘소 등이 있고. 대자산의 동북쪽으로는 의주길이 있고 남북으로는 고양동 누리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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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장군묘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유명한 말이 있죠? 그 말 그대로 청념결백했던 최영장군은 고려시대의 충신, 명장, 정치가였습니다. 아버지인 최원직 선생 봉분 아래에 있는데 부인인 문화류씨와 합장된 봉분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봉분의 모양은 고려말, 조선조 초기에 볼 수 있는 사각형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죠 봉분의 크기는 조선시대의 사대부 묘역 보다 작은편에 속합니다. 봉분 앞의 석물로는 상석, 혼유석, 묘비, 향로석, 문인석, 망주석 등이 있으나 모두 후대에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주차장에서 장군의 묘역까지는 약 600m 가량의 숲속길이 있어 고양동 누리길로 활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