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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역사 1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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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령(慰靈) 하라”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여단 (厲壇) 이야기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령(慰靈) 하라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여단 (厲壇) 이야기

 

고양시의 옛 지도를 보면 고양군 고양리에 고양군청 관아 자리가 기록되어 있고 그 위쪽 (북쪽)으로 고양여단 (高陽厲壇)이 표기되어 있지요.

여단은 고양군의 죽은 사람들 중에서 특히 억울하게 죽은 주민들, 백성의 원혼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만든 제단을 말 합니다. 생긴 모양은 서울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사직단과 비슷한 모양 이었습니다. 조선 태종1년부터 여단제가 시행되었는데 처음에는 한양 북쪽에 처음 여단을 설치하고 제를 지냈습니다. 처음 제안자는 고려말, 조선조 초기의 대학자 양촌 권근 선생입니다.

 

그 후 여단 제도는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고양군에도 여단이 만들어 집니다. 중기에는 대자동 일대에, 조선 후기에는 고양동 일대에 있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현장 조사 결과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단제례가 고양시의 역사에서 아주 의미깊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국가에서 주관하여 일반 백성들까지 제를 지내 주었다는 점입니다.

2.어린나이에 죽은 사람, 해산 하다가 죽은 여인, 살해당한 사람 등 모두 20여 가지로 혼령을 구분하여 좌단과 우단에서 따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3.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서는 국왕, 양반 등 지배층을 위한 제사는 많이 있었으나 전염병 예방 등의 목적을 가지고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는 매우 드물었다는 점입니다.

4. 기록을 통해 여단의 규모와 재질, 모양을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5. 고 지도에 여단이 고양군청과 가까운 거리에 표기되어 국가에서도 여단제례를 매우 중요시 여겼다는 점입니다.

 

전국 각 고을에서 억울하게 죽은 백성들을 위해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단. 우리 선조들의 남다른 민중사랑이 담겨져 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비록 본래 위치는 개발로 인해 원형을 그대로 복원할 수 없지만 여단의 여민, 정신은 오늘날 본 받아야 할 무형의 문화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