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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역사 1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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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구 대장동의 의견 (義犬) 갠비다리 이야기

덕양구 대장동의 의견 (義犬) 갠비다리 이야기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 마을 입구에는 갠비다리라 불리는 작은 다리가 있습니다. 능곡, 화정동 방향에서 대장동이나 내곡동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 해야 하는 다립니다. 현재 이 다리는 대장천을 건너는 다리로 이용되고 있는데 토당동과 대장동의 경계가 되고 있는 지점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마을의 주민들에 의하면 이 다리를 개비다리에서 지금의 갠비다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 이곳 대장동에 살던 한 선비가 행주나루에서 술을 마시고 이곳 대장천 뚝방 위에서 깊은 잠을 자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대곡역 방향에서 불이 발생하여 선비가 자고 있는 지점까지 번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선비가 키우던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주인을 구하기 위해 털에 물을 적시어 불을 끄기 시작 합니다. 대장천에 물을 적시고 다시 불속으로 들어가 불을 끄는 행동을 반복하다가 결국 불을 끄고는 죽게 됩니다. 잠에서 깨어난 선비가 주변을 살펴본 후 자신을 불속에서 구하고 죽은 개를 발견하고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자신을 구하고 죽은 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 다리 옆에 비석을 세우게 되었으며 그 후 이 비석이 있는 이곳은 견비다리라 부르다가 갠비다리로 불리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의 주관으로 새롭게 비석을 세워 지금도 비석이 잘 남아 있습니다.    
덕양구청 내 꽃 우물 공원 이야기

덕양구청 내 꽃 우물 공원 이야기

    고양시 덕양구의 중심지인 화정, 꽃 우물 공원 만들다.. 최근 마을 이름의 유래를 따서 만든 공원이 만들어 졌습니다. 고양시의 대표적인 도시개발의 마을은 화정동인데 우리말로 하면 꽃 우물 마을이 됩니다. 고양시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건의를 통해 대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마을에 있던 우물을 재현한 꽃 우물 공원을 덕양구청 입구에 조성하였습니다. 길이 약 40m 의 물길과 꽃 우물에는 시원한 물이 흐르고 있어 오고가는 시민들이 쉴 수 있도록 의자와 앉을 수 있는 시설물을 설치하여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우물의 정면에는 꽃우물 공원을 만들게 된 경위, 유래, 스토리 텔링이 된 해설, 설명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도시화가 추진되기 전 이곳 화정에는 유명한 우물 두 군데가 있었어요.. 지금의 화수고 부근에는 화수마을 우물이, 화정역 부근에는 찬우물이 있었어요. 서삼릉의 왕릉과 화정 우물과의 관련, 이곳에 우물을 파게 된 경위 등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어요. 돌의자 밑에는 신도시 개발 이전의 마을 모습 등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공원은 마을의 지명유래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최초의 공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죠.. 더운 여름날 많은 주민들이 이곳에서 신을 벗고 쉬는 모습을 볼 때 옛 화정의 개발 전 모습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고양시 최초의 힐링산책길, 벤치, 힐링글, 명상의 숲, 흥국사 북한산 전망대

고양시 최초의 힐링산책길, 벤치, 힐링글, 명상의 숲, 흥국사 북한산 전망대

<흥국사 전경>   우리시에서 가장 오래된 천년고찰 흥국사, 신라 문무왕 원년 서기 661년에 창건한 사찰이니 14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사찰입니다. 흥국사에는 보호수, 경기도 지정문화유산, 고양시 향토 문화유산가 있는데 목조건축물, 그림, 나무, 탱화, 비석 등 소장 문화유산의 분야도 참 다양하죠.. 흥국사는 오래전부터 마음과 육체가 아픈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주신다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약사전 (藥師殿)이 주 불전 (佛殿)입니다. 약사전은 고양시의 사찰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화려한 아름다운 목조 건축으로 유명합니다. 이 약사전의 서쪽 건물이 나한전 이고 나한전 뒤로 수령 300년의 상수리 나무 1그루가 있습니다. 이 상수리 나무 위쪽으로 사찰 측에서 북한산 전망대를 나무 데크로 만들었지요. 이곳에서 바라 보이는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와 흥국사의 한옥 건물, 숲과 나무의 어울림이 조화를 이루어 과히 절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전망대에서 흥국사의 주산인 노고산 (한미산) 정상 방향으로 약 30m 정도 이동하면 흥국사 명상의 숲이 나옵니다. 약사전의 뒤편에 자리한 본 명상의 숲은 흥국사의 주지 스님이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고 명상의 시간을 갖도록 조성한 공간입니다.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여러 개의 명상의자, 꽃나무 식재, 큰 나무 가지치기를 통해 풍광을 매우 훌륭하게 만들었지요.. 곳곳에 마음에 위로를 받는 좋은 말씀도 나무에 걸려 있구요. 명상의 길도 오솔길로 만들어져 있어 산보도 즐길 수 있는 있습니다. 특히 명상의자에 앉아 북한산의 인수봉부터 백운대, 노적봉, 그리고 원효봉과 의상봉, 비봉, 향로봉까지 보이는 경관과 바람소리, 풍경소리, 새소리, 목탁소리 등은 힐링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근심을 버리고 잠시나마 나만의 시간, 명상, 마음치유로 강력하게 추천하는 곳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만의 힐링 장소를 가지는 것은 참으로 필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마음이 아프거나 지칠 때 흥국사 힐링의 숲에서 기쁨과 치유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북한산성을 쌓고 북한지 책자를 저술하신 스님 성능 (性能) 대사

북한산성을 쌓고 북한지 책자를 저술하신 스님 성능 (性能) 대사

<북한산성 중성문> <봉성암 성능대사부도>   고양시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문화유산 중 한곳은 명산, 북한산에 있는 북한산성입니다. 총 길이 12,7km에 이르는 거대한 석성입니다. 백운대와 같은 높은 곳은 해발 높이가 800m 가 넘는 곳까지 성벽을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 했지요. 크게 북한산성은 성곽과 성내의 여러 시설로 구분됩니다. 성안에는 왕이 자주 행차하던 행궁 (行宮)을 비롯하여 어영청, 금위영, 훈련도감이 머물던 병영지, 그리고 태고사, 중흥사 등의 전통사찰, 중성문과 호조창, 산영루, 하창지 등 다양한 시설들이 지어졌습니다. 이 크고 웅장한 북한산성의 성벽을 쌓는데 약 6개월만에 완성한 일은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문화유산청, 서울시, 고양시, 등이 94년부터 복원을 위해 수백억원을 투입하고 있지만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의 성곽 축조술의 기술력에 실로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여장은 일부 무너진 곳도 있지만 성체는 아직도 견고 해서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등산로 삼아 이용하고 있습니다. 조선 숙종대 위대한 토목기술의 진수를 보여준 북한산성은 스님과 군사, 백성들이 힘을 합쳐 쌓은 것입니다. 특히 성곽을 쌓는데 기술력이 뛰어난 스님들의 공력은 북한산성의 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북한산성 축성을 위해 조선팔도에서 모여든 스님들을 통솔한 분이 성능 대사입니다. 성능 스님은 지리산 화엄사에 계시던 스님이신데 나라로부터 팔도도총섭의 직을 받아 북한산성 축성에 책임을 지게 됩니다. 북한산성을 축성한 후 향후 운영과 관리 등을 위해 북한지 (北漢誌) 책자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지에는 북한산과 산성, 그리고 성안의 주요 시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현재 북한산에는 전통사찰 봉성암 (奉聖庵)이 있는데요. 성능대사를 모시고 있는 암자 라고하여 봉성암 이라 부르고 있어요. 봉성암 경내에는 성능대사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부도탑,( 사리탑 ,승탑 )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188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습니다. 고양시와 경기도 등에서는 북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발굴조사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데 본 성능대사의 북한지 책자가 결정적인 문헌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석빙고 (石氷庫)이야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석빙고 (石氷庫)이야기

<행호관어도>   고양시의 대표적인 강, 한강. 이 한강을 예전에는 행호강, 또는 대강, 행주강으로 고양 사람들은 부르곤 했습니다.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대가이신 겸재 정선 선생도 행주산성이 있는 행주 부근을 행호관어도란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곳 행주나루는 서해의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고 하루에 2번 강물의 흐름이 달리 보이는 지역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웅어와 숭어 등 많은 물고기가 잡히던 곳입니다. 특히 고양지역의 대표적인 특산물, 진상품인 웅어 (위어)를 집중적으로 잡던 곳이지요.. 웅어는 바다 물고기인데 4월부터 6월 사이에 산란을 위해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행주산성 일대로 몰려들게 됩니다. 모내기를 하는 시기가 가장 많은 웅어가 잡히는 계절입니다. 이때 잡힌 웅어를 보관하기 위해 현재 행주교회 아래의 공터가 옛 석빙고 자리입니다. 고기를 얼음에 보관 했다가 왕에게 신선한 상태로 진상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고양시에도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 석빙고가 있었다는 사실 재미있죠...    
세종 대왕의 동생 성령대군의 묘에서 지명유래 된, 덕양구 대자동 마을..

세종 대왕의 동생 성령대군의 묘에서 지명유래 된, 덕양구 대자동 마을..

<최영장군묘> <성녕대군 묘> <성녕대군 신도비>   고양시청이 있는 주교동에서 동북쪽에 있는 대자동 (大慈洞), 행정구역으로는 관산동, 고양동에 속해 있는 법정동 마을 이예요. 마을의 입구에는 일명, 필리핀 참전비와 태극기 공원이 있습니다. 통일로에서 대자동으로 들어오는 대양로를 따라 약 1,5km 정도 들어오면 우측에 최영장군 묘, 좌측에 성령대군 묘소가 있습니다. 성령대군의 묘소도 고양시 향토 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는데 사당으로는 대자사 (大慈祠)가 있고 사당 옆으로는 조선조 전기에 세워진 성령대군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성령대군은 태종대왕의 4번째 대군으로 세종대왕의 친 동생인 사람입니다. 부모님에게 큰 사랑을 받은 막내 아들인데 안타깝게도 13살의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게 됩니다. 당시 창녕성씨 부인이 있었으나 후사가 없어 세조대왕의 아우인 안평대군을 양자로 삼았으나 안평대군도 계유정란으로 죽게 됩니다. 막내 아들인 성령대군의 죽음을 본 태종과 왕비는 이곳 대자동에 무덤과 사당을 만들어 그의 영혼을 달랬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남쪽으로 100m 지점에 원찰 (願刹)으로 짓게 하고 그 이름을 큰 사랑을 준 곳이라 하여 대자사 (大慈寺)라 했지요.. 그리고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성령대군의 극락왕생과 부처님의 공덕을 기원 했습니다. 이후 대자사는 조선을 대표하는 큰 절이 되었습니다. 이후 마을 이름도 아예 대자라 부르게 했습니다. 이곳 대자골, 대자동 마을에는 많은 종친들의 묘소가 있는데 30개가 넘는 유명한 인물들의 묘가 이곳 대자동에 남아 있습니다.      
6월 호국의 달, 고양을 지키다 전사한 무명의 영웅들

6월 호국의 달, 고양을 지키다 전사한 무명의 영웅들

1950년 시작된 6,25전쟁, 통일로와 경의선이 북한으로 이어져 있는 고양지역은 그 피해가 컸습니다. 특히 개성과 가까운 거리에 있고 1,4후퇴 등으로 몇 번의 주인이 바뀌어 많은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았죠. 이 과정에서 고양시 곳곳에 어리고 젊은 무명용사들이 전사하여 부모를 찾지 못하고 쓸쓸히 나무 아래 숲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최근 관내에서도 국방부 유해 발굴단 주관으로 전사자 유골 수습과정에서 20구가 넘는 유해가 발굴되었습니다. 파주 보광사 방향에서 고양시 고양동 방향으로 진군하던 적과 접전을 벌이다 소중한 목숨을 잃은 국군유해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전사한지 60년 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젊은 청춘의 병사들은 총과 군화, 등 유품들과 함께 유골이 발굴되었습니다. 군번줄이 발견되지 않아 그 신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장병들의 유해.. 이번 발굴을 계기로 친족을 찾기위한 작업이 시작됩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많은 전우들이 우리시 곳곳에서 발굴되지 못하고 지금도 숲속 땅아래에 잠들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봉산, 대자산, 박달산,에서 유해가 발굴되었고 앞으로도 여러 유해가 발굴될 것으로 보입니다.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6,25전사자 무명용사들의 이야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고양시 최초의 마을, 탄현동 구석기 유적 이야기

고양시 최초의 마을, 탄현동 구석기 유적 이야기

2007년 10월, 고양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일산서구 탄현동에서 고양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대규모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 매장 문화유산에 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지금으로부터 5 만 년전부터 6만 5 천 년전 까지의 유물 307점이 쏟아져 나왔어요.   한국국방문화유산연구원의 전문적인 세부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몸돌, 끌게, 찌르게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때 발견된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일부는 발굴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6년 1월 한국문물연구원에서 부근지역 아파트 공사 중 중기구석기 및 조선시대 유물 228점이 새롭게 발굴되었습니다. 이 두 곳은 현재까지 고양지역에서 가장 오래전에 발굴된 유적, 유물로 고양시의 역사를 구석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앞당기는데 결정적인 유적이 되고 있습니다. 황룡산과 고봉산 자락에 위치한 이 지역을 비롯해서 인근의 파주나 김포 등지에서도 구석기 유적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수혈식 유적지 등도 발견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지요. 이번 구석기 유적의 발굴은 단순히 발굴조사로 끝나지 않고 발굴의 성과를 기록한 문화유산발굴조사 보고서가 발간되어 후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탄현동 구석기 유적의 새로운 발견은 고양시의 역사를 다시 써야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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