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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0
임진왜란 3대 대첩, 행주대첩
592년(선조 25) 7월 권율장군은 금산군 이치(배재)에서 고바야카와의 일본부대를 무찌르고 그 공으로 전라도순찰사가 되었습니다. 그 뒤 명나라의 군대와 합세하여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 북상하다가 수원 독왕산성에서 왜군을 무찔렀고, 1593년 2월에는 서울 서쪽 20리에 있는 행주산성으로 진을 옮겼습니다.
이곳에는 권율의 부대 외에 승장 처영의 의승군이 집결하여 병력은 약 3천여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활·칼·창 외에 변이중이 만든 화차(火車)와 권율의 지시로 만든 수차석포(水車石砲) 등 특수무기로 무장하는 한편, 재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서 적의 침략에 대비했습니다.
1593년 2월 12일 새벽 왜군은 총대장 우키타의 지휘하에 3만여 명의 대군을 7개부대로 나누어 고시니·이시다·구로다·요시가와 등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하여, 성을 포위·공격 했습니다.
성 안의 관군과 의승군은 화차·수차석포·진천뢰·총통 등을 쏘아대며 용감히 맞섰고, 권율장군은 직접 물을 더서 나누어주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습니다. 화살이 다 떨어지자 차고 있던 재를 뿌리고 돌을 던지며 싸웠고, 관과 민, 남과 여를 가리지 않고 모두 참여했습니다. 부녀자들도 긴 치마를 잘라서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나르는 등 투석전을 벌이는 군사들을 도왔습니다.
마침 경기수사 이빈과 충청수사 정걸이 화살을 가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일본군의 후방을 칠 기세를 보이자, 이미 큰 피해를 입은 일본군은 사방의 시체를 불태우면서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관군은 도망가는 적들을 추적하여 130여 명의 목을 베고 우키타·요시다·요시가와 등 일본군 장수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갑옷·창·칼 등 많은 군수물자를 노획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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