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행궁지
지정번호 : 사적 제479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169
행궁은 유사시 왕의 행재소가 되는 곳으로 북한산성이 축성을 시작하기 한달 전인
숙종 37년 5월 25일에 당시 산성의 공사를 주관하던 감동당상인 김우항에 의해 건립이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행궁 규모는 내전이 좌•우 상방 각 2칸, 대청이 6칸, 사면퇴 18칸을 합한 총 28칸이었습니다.
이 정전 외에 또 좌•우•각방•청•대문•수라소 등의 부속건물이 35칸이나 되었습니다.
외전 역시 내전과 같은 규모의 정전 28칸, 내행각방 12칸을 위시한 루(樓)•청•고간•대문 등 총 33칸의 부속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 후 일제시대까지 그 건물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언제 지금과 같은 모습의 터만 남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행히 일제시대에 찍힌 사진이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을 뿐이며 단국대학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해 정확한 규모와 성격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행궁지는 경기도 기념물 제160호로 지정되었다가 사적 제479호로 변경 지정되었으며,
2009년 북한산성행궁지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였고 2011년 4월에 시굴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상운사 목조아미타삼존불
지정번호 : 유형문화유산 제190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370
상운사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배치한 목조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있습니다.
삼존불의 대좌에는 묵서로 발원문이 적혀있는데, ‘강희53년(1713) 7월 5일 시작하여 8월 6일 일을
완성하여 노적사 극락보전 아미타연대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을 통하여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이 1713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음보살은 크기나 조각수법에서 아미타불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 따로 제작된 보살상을 배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관음보살 밑다박에 ‘1800년 4월 15일 관음보살을 개금하여’라는 기록을 통하여 관음보살 역시 19세기 이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양 봉성암 전성능대사부도
지정번호 : 유형문화유산 제188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204
북한산 태고사 뒤편의 봉성암 경내에 있습니다.
승탑의 구조는 4개의 판석을 짜맞춘 방형 지대석위에 방형 하대석과 중대석,
팔각모양의 상대석이 안치되어 있으며, 그 위로 팔각의 탑신석 팔각의 옥개석,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팔각의 옥개석 일부는 현재 파괴되어 있으며 전체규모는 280m입니다.
탑의 기단부 앞에는 74*70*59cm의 불규칙한 육면체 석재가 놓여져 있는데 승탑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승탑은 6.25당시 폭격으로 일부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인데, 완전한 상태는 아니며 탑신부의 부재는 소실된 상태입니다.
성능이 살아온 시기는 미상인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호는 계파(桂坡)입니다.
본래 경상북도 학가산의 승려였으나 화엄사 각성의 문하에서 3년 동안 수행하여 도를 이루었습니다.
화엄사의 장륙전은 1699년(숙종 25)에 공사를 시작하여 3년 만에 완공을 되었습니다.
성능스님이 언제 사망하시고 어떠한 연유로 북한산에 부도가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의 북한산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승탑입니다.
북한산성의 수문을 지킨, 고양 북한산 서암사지
지정번호 : 문화유산자료 제140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509
서암사는 북한산성 축성 이후 승병을 유치하기 위해 건립한 13개의 사찰 중 하나입니다.
승려 광헌에 의해 133칸 규모로 창건되었으며 고려 문인공 민지(閔漬)가 살았던 유지가
그 옆에 있었기 때문에 민지사로 불리었으나 후에 사명을 고쳐 서암사라 불렀습니다.
서암사는 수문일대의 산성 수비 역할을 담당하다가 19세기 말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산성 각 문에는 이렇게 문을 지키는 사찰을 건립햇 경비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고 합니다.
북한산의 자랑, 북한산성
지정번호 : 사적 제162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
북한산성은 현재 사적 제16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711년 숙종의 명에 의해 축조된 현재의 산성은 고양시와 서울시에 걸려있습니다.
총 둘레는 12.7km이며, 자연암만을 제외하면 8.4km입니다.
성곽 안 지역의 면적은 약 6.2㎢인데 여의도의 3/4정도 크기입니다.
북한산성의 동북쪽에 자리 잡은 삼각산은 명승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총면적은 274,143㎡인데, 대부분이 고양시입니다.
북한산성은 200개소가 넘는 문화유산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 현황이 파악되어 있는 문화유산는 총71개소입니다.
그중 국가지정문화유산가 5건, 도지정문화유산가 6건입니다. 아직도 찾아야할 문화유산이 산재되어 있는 곳이 바로 북한산성입니다.
북한산성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접근성입니다. 북한산성 인근을 그린 옛 지도와 그림들을 보면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이
탕춘대성(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특징은 유사시 최대한 빨리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길목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방어력입니다. 북한산을 등산해 보신 분들은 누구나 북한산의 능선을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 공감하실 겁니다.
세 번째는 최고의 명승을 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산성은 국가지정문화유산 명승 10호인 삼각산을 끼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한가운데이자 북한산성 동북쪽에는 북한산의 중심 삼각산이 있습니다.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세 봉우리를 이루고 있지요.
네 번째는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산성은 정조와 순조 때 일부분이
수축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대부분의 성곽은 1711년 숙종시기에 축조되었습니다.
이 시기 때 형성된 성곽은 현재까지 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북한산은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전세계에서 수도와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북한산을 다시 한 번 바라보시는 건 어떨까요?
중성문
이곳은 대서문과 행궁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중성문입니다. 가운데 있다고 해서 중성문이라 불리고 있는데요.
이 중성문을 지나는 이 문이 북한산성에서 가장 유적지가 많고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숙종의 길입니다.
숙종대왕이 자주오셔서 지어진 이름인데요.
왼쪽에 있는 저 정문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이고 이 오른쪽에 있는 이 문은 이 성안에 살던 주민이나 군사들이 죽었을 경우에 그 시신이 옮겨진다고 해서 일명 시부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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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이곳 북한산성은 해발 836.5미터의 백운대를 중심으로 하여 오른쪽으로 만경대 왼쪽으로 영취봉을 사이에 두고 성곽이 만들어졌습니다. 북한산성의 성곽의 총 길이는 12.7km 입니다만 지금부터 300여년 전에는 이곳 북한산성을 쌓는데 숙종때 딱 6개월이 걸렸습니다. 6개월 동안에 이 넓은 큰 산성을 6개월만에 완성했던겁니다.
태고사
북한산 태고사에는 보물로 지정되어져있는 태고사 원중국사의 부도탑비가 있습니다. 목원 이색선생께서 직접 짓고 쓰신 유명한 금석문인데요. 이곳 태고사에 있는 원중국사는 우리나라 모든 불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