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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역사 1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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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동 숫돌고개, 여석령(礖石嶺) 이야기

삼송동 숫돌고개, 여석령(礖石嶺) 이야기

  통일로가 지나는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과 오금동 사이에는 일명 숫돌고개라 불리는 유명한 고개가 있죠. 지금은 남북으로 연결된 1번국도 통일로가 고개의 정상을 관통하고 있구요. 본래 고개 주변은 평범한 농촌 마을이었는데 최근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이곳을 숫돌고개라 부르는 것은 1593127일에 있었던 임진왜란 벽제관 전투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명운을 건 벽제관 전투는 명나라 대군과 일본군이 싸운 유명한 전투입니다. 이 싸움의 첫 전투지가 바로 이곳 숫돌고개 였습니다. 이여송 제독이 이끄는 수만의 명나라 군사가 이곳 숫돌고개에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에게 기습을 당하게 됩니다. 화력이 우세하고 평양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찌른 명나라는 숫돌고개에서 일본군 정예병에게 결국 크게 패하게 됩니다. 명나라 이여송 장군도 부하의 희생으로 가까스로 목숨만 부지하여 파주를 지나 개성까지 후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름 후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일본군은 한양성을 떠나 남쪽지방으로 완전히 후퇴하게 됩니다. 일본군이 한양성에서 물러나자 이여송과 명나라 군대는 이곳 숫돌고개를 넘어 진군하게 됩니다. 이때 이여송 장군은 이곳 옛 패전지에서 전사한 장졸들을 되새기고 자신의 명검을 이곳 바위에서 갈며 일본군에게 복수를 다짐했다고 합니다. 일명 숫돌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한자로 하면 여석령이 되는 겁니다. 숫돌고개 좌우로는 한북누리길과 서삼릉 누리길이 만들어져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죠.. 이여송 장군이 칼을 갈았다는 바위는 통일로 확장 사업으로 지금은 없어졌어요.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이 고개를 숫돌고개라 부르며 축제까지 벌이고 있지요.. 일부 역사학자들은 벽제관 전투를 숫돌고개 전투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고 해야 할 정도로 임진왜란 전사 (戰史)에서 중요한 곳입니다.  
고양동의 은행나무 괴갑수(魁甲樹) 이야기

고양동의 은행나무 괴갑수(魁甲樹) 이야기

우리시 고양동 벽제관지에서 서쪽으로 약 100m 지점에는 수령 600년 정도된 은행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현재 보호수 나무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는 유명한 나무입니다. 현장에는 나무에 대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요. 예전 이 나무 부근에 고양군청이 있을 당시에 고양군수가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래 한 그루인데 현재는 커다란 나무 가지 2개가 있어 마치 두 그루 같이 보입니다. 나무 크기는 높이가 15m, 둘레도 6m이상 되는 큰 나무입니다. 이 은행나무를 마을 주민들은 괴갑수라 부르기도 합니다. 1593년 임진왜란 당시에 이곳 고양동, 벽제동, 대자동 일대에서 벽제관 전투가 있었지요.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 군사와 일본군이 임진왜란 최대의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숫돌고개에 매복한 일본군에게 명나라 대군이 크게 패하게 되었는데 이 전투를 벽제관 전투라 부릅니다. 대륙의 명나라 대군을 무찌른 일본군 장군이 자신의 전승을 자랑하기 위하여 이 나무에 자신의 투구와 갑옷을 걸어두었다고 하여 괴갑수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은행이 튼실하게 열리고 있어 수세가 아주 건강하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동네한바퀴 프로그램 등을 통해 현장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고양동 은행나무는 스토리가 있는 유명한 나무 이야기입니다.
송강(松江)마을 이야기

송강(松江)마을 이야기

송강 마을은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공릉천 부근에 있는 오래된 마을입니다. 현재는 약 15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을 송강 마을이라 부르는 것은 조선조 중기의 정치가, 문인, 시인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송강 선생은 생전에 이곳에서 시묘살이를 비롯하여 자주 머물곤 했죠. 지금도 마을에는 송강문학관과 송강 정철 선생의 부모, 형님 등의 묘소가 자리해 있습니다. 문학관 바로 뒤로는 송강이 사랑했던 의로운 기생 강아의 무덤도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송강 정철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가 우암 송시열 선생 등의 주도로 지금은 충북 진천으로 이전했습니다. 송강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송강정철 시비, 송강의 대표적인 시, 송강마을에서의 정철의 활동 등이 적혀있는 10여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매년 고양시의 지원으로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 주관으로 송강문화축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고양시 최초의 마을, 탄현동 구석기 유적 이야기

고양시 최초의 마을, 탄현동 구석기 유적 이야기

2007년 10월, 고양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일산서구 탄현동에서 고양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대규모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 매장 문화재에 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지금으로부터 5 만 년전부터 6만 5 천 년전 까지의 유물 307점이 쏟아져 나왔어요.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의 전문적인 세부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몸돌, 끌게, 찌르게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때 발견된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일부는 발굴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6년 1월 한국문물연구원에서 부근지역 아파트 공사 중 중기구석기 및 조선시대 유물 228점이 새롭게 발굴되었습니다. 이 두 곳은 현재까지 고양지역에서 가장 오래전에 발굴된 유적, 유물로 고양시의 역사를 구석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앞당기는데 결정적인 유적이 되고 있습니다. 황룡산과 고봉산 자락에 위치한 이 지역을 비롯해서 인근의 파주나 김포 등지에서도 구석기 유적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수혈식 유적지 등도 발견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지요. 이번 구석기 유적의 발굴은 단순히 발굴조사로 끝나지 않고 발굴의 성과를 기록한 문화재발굴조사 보고서가 발간되어 후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탄현동 구석기 유적의 새로운 발견은 고양시의 역사를 다시 써야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고양시의 생일은 3월 23일입니다.

고양시의 생일은 3월 23일입니다.

고양시의 생일은 3월 23일입니다.   인구 104만명이 살고 있는 고양시, 고양시의 생일은 3월 23일 입니다. 604 년 전인 조선태종 13년 (1413년) 당시 고봉현의 고 (高)자와 덕양현의 양 (陽)자를 따서 고양(高陽)이란 이름이 처음 만들어 졌죠. 고양의 순 우리말은 높빛이 됩니다. 고양시는 고양 이란 이름이 만들어진 이후 단 한번도 명칭이 바뀌지 않고 오늘날 까지 사용하고 있는 유서 깊은 이름입니다.   고양동, 고양향교, 고양초교, 등은 모두 100년 이상 사용되고 있는 명칭들입니다. 2013년 3월 23일, 고양 600년을 맞아 고양시에서는 대대적인 고양 600년 사업을 펼쳐 산영루, 영사정 등 문화재를 복원하기도 했지요.. 매년 3월 23일 고양시 생일을 축하해요..
고양 누리길과 함께하는 국사봉 고인돌.

고양 누리길과 함께하는 국사봉 고인돌.

고양 누리길과 함께하는 국사봉 고인돌.   고양 원당 전철역에서 출발하여 행주산성까지 이어진 길이 고양 행주누리길 입니다. 이 누리길 구간 중 제일 높은 산 봉우리가 바로 성라산 국사봉 이죠.. 이 국사봉 기슭, 성라산 약수터에서 서쪽으로 약 200m 지점에 고인돌이 남아 있습니다. 이 고인돌 인근에서는 돌칼이 발견 되엇는데 지금은 서울대 박물관이 가지고 있어요. 이 고인돌의 덮개돌은 땅위에 놓여져 있고 받침돌은 땅속에 있어 눈으로 확인하긴 어려운 모양을 하고 있지요..   국사봉 고인돌은 고양시의 청동기시대 문화유산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할 것입니다. 이곳 이외에도 행주누리길에는 지렁산 고인돌도 있는데 그 모양이 예쁘고 오래된 나이 등, 특이성 등으로 고양시 향토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어요..
고양시의 아름다운 한옥 (韓屋), 영사정(永思亭)

고양시의 아름다운 한옥 (韓屋), 영사정(永思亭)

      <복원된 영사정>         우리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옥 문화재 영사정입니다.     이 건물이 바로 영사정입니다.     이 한옥은 1709년에 처음 지어진 많은 이야기가 있는 집 입니다.     상량판과 ㄷ 자 모양의 안채, 걸쇠와 문, 감나무와 어우러진 한옥 기와지붕 등이 참 예쁩니다.     대문 앞, 김주신 신도비, 영사정 뒤편에서 보는 북한산의 산 봉우리는 마치 아름다운 산수화를 보는 듯 합니다.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가을, 제가 여러분을 모시고 영사정 문화재 답사를 한번 갈께요..                
1년에 한번 볼 수 있는 귀한 불화 (佛畫)

1년에 한번 볼 수 있는 귀한 불화 (佛畫)

              천년고찰 흥국사 (서기 661년 창건)는 우리시에서 가장 많은 부동산 문화재가 있는 곳이죠. 한미산 (노고산)자락에 위치한 흥국사에는 불화, 불상, 목조건축물, 보호수,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지정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지요..     특히 이곳에는 1년에 한번만 볼 수 있는 귀한 그림이 있지요. 1902년에 봉안된 것이며 1710년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화의 크기는 가로 358cm, 세로 650cm의 규모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의 양식을 가지고 있는 괘불함속에 들어 있다가 부처님 오신날 하루만 일반인에게 공개됩니다. 본 그림은 아미타삼존불화로 수명장수와 극락왕생 등을 기원하는 내용입니다. 이 괘불에는 가섭, 아난과 문수동자, 보현동자,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시에서는 가장 크고 유명한 불교 그림 이지만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그림입니다.     제가 이번 부처님오신날 찍은 사진이 있으니 잘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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