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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역사 1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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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동 은지(隱池)이야기

도내동 은지(隱池)이야기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연못, 도내동 은지 (隱池) 이야기 지정번호: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36호 지정년도: 1999년 시대 : 조선조 전기 15세기 (1453년) 소유 및 관리자 : 한산이씨 인재공파 종중 위치 :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847-3   고양시 도내동에는 565년 전에 만들어진 연못이 있지요.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연못인데 현재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어요. 이 연못은 조선 단종 대왕 때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망월암 이축(李蓄, 1402 – 1473)선생이 만들었지요. 이 연못이 얼마나 유명한지 마을 이름도 은못이(은무시)라 부를 정도입니다. 총면적은 6,600㎡인데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연꽃이 심겨져 있을 정도로 연못의 본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속에는 붕어, 잉어, 게 등이 살고 있어 환경, 생태적으로도 참 중요한 곳입니다. 은지 연못을 처음 만든 사람은 조선조 전기의 학자, 충신, 문신인 이축선생입니다. 선생의 묘소는 이곳 은지 연못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m 거리에 있습니다. 이축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고려말의 대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의 증손자 입니다. 16세에 관직에 올라 호조의 정랑, 이조참의 등을 거쳐 단종 대에 황해도 관찰사를 지냅니다. 1453년 단종이 폐위되고 사육신이 죽임을 당하게 되자 벼슬길을 버리고 선산이 있는 도내동에 살기 시작 하죠. 그리고 자신의 호를 단종이 유배되어 있는 영월을 보고 기린다는 뜻에서 망월암(望越庵)으로 부릅니다. 그 후 이축 선생은 돌아갈 때 까지 단종대왕을 그리워하며 이 연못을 파고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은거(隱居)하며 만든 연못이라 하여 은지(隱池)라 부릅니다. 은지 연못은 고양지역의 옛 지도는 물론 기록에도 표기될 정도로 유명 했습니다. 임금을 지키려 했던 충신의 얼과 함께,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고양지역 최고의 연못, 도내동 은지. 고양의 문화유산 이야기로 전해 드립니다.
고양 효자동 사지(高陽 孝子洞 寺址)

고양 효자동 사지(高陽 孝子洞 寺址)

고양 효자동 사지(高陽 孝子洞 寺址)   1.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 일원   2. 연혁 고양 효자동사지는 지금까지 ‘고양 덕양 효자동 건물지’로만 알려져 왔을 뿐 사명과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999년도에 발간된 『고양시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따르면, 유적은 ‘사기막골’ 내 군부대 연병장을 지나 안쪽으로 이어지는 임도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유적에는 건물지로 추정되는 터가 있는데,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이 남아 있으며, 건물지 석재도 확인된다고 하였다. 또 토기편, 와편 등의 유물도 산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곳은 2017년 4월 ‘효자동 건물지’ 배후에 사면 위쪽에서 등산객에 의해 천정구(泉井口) 글자가 새겨진 팔각 돌기둥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사지로 확인되었다. 당시 확인된 바로는 사면 위에 비교적 넓은 평탖ㄴ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축대도 남아 있으며, 돌기둥 주변에서는 명문 와편과 연화문 수막새편, 치미편 등도 함께 확인되었다고 한다. 당시 전문가는 이곳을 ‘인수사’ 또는 ‘청담사’터로 추정하기도 했다. 한편 사지 일대는 예부터 청담동(淸潭洞)으로 불리며 빼어난 경치로 이름이 높았다. 따라서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현재 다수의 유람기와 그림이 전하고 있다. 그 중 조선후기 어유봉(魚有鳳)의 청담동부기(淸潭洞府記)에는 근처에 ‘옛 불당’이 있다고만 언급되어 있다. 반면 김시민(金時敏)의 「청담기(淸潭記)」에는 사찰에서 밥을 지어먹으며, 하룻밤을 보냈던 당시 상황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또 사찰은 대암(臺巖) 위에 있으며, 인수봉이 눈앞에 보이는 곳에 있다고 하여, 그 위치 추정에 참고가 된다. 한편 심육(沈錥)의 「일기(日記)」에는 ‘다리 동쪽에 스님들이 거처하는 절이 있는데, 지대가 매우 높아서 정자에서 우러러 보이며, 울창한 나무 사이로 그림자가 은은하게 비친다.’고 하였다. 이것이 효자동사지를 언급한 것이라면, 심육이 이곳을 방문했던 때가 1712년이므로, 이때까지도 사찰이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양사이버역사박물관이 추천하는 여름나기

고양사이버역사박물관이 추천하는 여름나기

무더운 여름, 우리 고양시에서 여름나기를 위해 유익하고 시원한 몇 곳을 추천해 드립니다.     1. 600년 기념 전시관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2동 호수공원 꽃 전시관 남쪽에 자리해 있다. 입장료는 무료 이다. 월요일은 휴관일 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고양시 역사의 시원을 보여주는 5020 고양 가와지 볍씨를 비롯하여, 행주산성, 벽제관지, 북한산성, 서오릉, 서삼릉, 일산역, 등의 주요 문화유산과 고양의 역사 등을 볼 수 있다. 관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시해설사가 있어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층에는 역사와 문화유산 등에 대한 참고 도서가 비치되어 있어 쉼터 및 도서관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전시관은 2013년 고양 명칭 사용 600주년을 맞아 고양시민들에게 고양시 바로알기 등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2. 숲과 그늘이 있는 곳 서오릉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 이다. 서울의 서쪽에 있는 다섯 개의 능 이라 하여 서오릉 이라 부르고 있다. 서오릉에는 서어나무길, 소나무길, 참나무길 등 숲과 함께 흙길을 걸을 수 있어 건강, 힐링, 교육의 장소로 좋다. 숲속 길을 걸으며 중간 중간 보이는 조선 왕릉의 이야기, 능에 묻혀 있는 인물들의 사연,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매표소 입구에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에게 문의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주차장 부근에 서오릉 왕릉 전시관도 있어 시원한 실내에서 영상과 전시물을 통해 조선 왕릉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서오릉에서 특히 유심히 보아야 할 능은 조선조 제 19대 숙종대왕과 인현왕후 등이 잠들어 있는 명릉(明陵)이다. 조선시대의 여러 왕릉 중에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서오릉에서 처음 만나는 입구에 자리해 있다. 서오릉에는 명릉 외에도 익릉, 경릉, 홍릉, 창릉이 있고 숙종의 부인인 장희빈의 묘소도 남아 있다. 주차비는 무료 이며 입장료는 고양시민에 한해 오백원이다. 시원한 나무그늘과 함께 산책코스로 서오릉을 추천 한다.   3. 시원한 초가집, 일산 밤가시 초가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에 있다. 현재 경기도 지정문화재로 보호되고 있으며 일산 신도시 개발 과정 중에서 유일하게 보존된 건축물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또아리 모양의 초가집으로 밤나무로 지어졌고 밤가시 마을에 있어 밤가시 초가집 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부터 약 150년 전에 지어진 초가집인데 지붕의 가운데 부분이 뚫려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마루에 앉아 있으면 하늘이 보이고 대문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마음이 상쾌해 진다. 집의 마당이 모두 황토흙으로 되어 있어 지붕과 벽, 바닥이 시원하다. 이곳에도 문화관광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교육적으로도 좋으며 일산 신도시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주차비와 입장료는 무료 이다.   4. 천년 고찰 고양 흥국사   고양 흥국사는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한미산(노고산) 아래에 자리해 있는 천년 고찰 이다. 신라 문무왕대인 서기 661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 산속에 있어 시원한데 승용차로 일주문 앞까지 갈 수 있어 접근성도 좋은 편 이다. 산의 숲속에 있는 사찰인데 오후에 가면 숲의 그늘 속에서 천년고찰을 둘러볼 수 있다. 미타전 건물은 실내로 창문을 열면 숲속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흥국사 마루에 앉아 있으면 여러 점의 문화유산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조 영조연간에 지어진 고양시 최고의 목조건축물 흥국사 약사전이 보인다. 그 좌측에는 나한전, 우측에는 명부전이 있다. 아미타전 (흥국사대방)에는 극락구품도 그림과 아미타불 불상이 보존되어 있다. 약사전 좌측으로 오르면 수령 250년의 상수리 나무가 있고 나무그늘 아래에는 작은 의자들이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보이는 흥국사와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가 가히 아름답고 멋지다. 이곳에서 숲속의 명상길을 따라 노고산 방향으로 약 50m 만 오르면 좌측의 백운대로부터 우측의 향로봉까지 장관이 펼쳐진다.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삼각산을 비롯하여 20여개의 봉우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주변에 흥국사에서 제작한 힐링 의자, 힐링 길이 있어 시원한 풍광과 함께 유서깊은 흥국사의 문화유산을 감상할 수 있다. 저녁 6시경, 저녁 예불을 알리는 흥국사의 대종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주차비와 입장료 모두 무료이다. 주말에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5. 행주산성 역사공원과 이가순 선생 송덕비   무더운 여름, 시원한 강바람이 그립다. 이런 무더위에 한강 바람을 즐기기 좋은 곳으로 덕양구 행주외동 한강 가에 있는 행주산성 역사 공원을 추천 한다. 공원 내에 화장실도 있고 나무그늘과 의자도 있어 무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이 좋다. 한강물도 만져볼 수 있고 버느나무 그늘, 바람개비 조형물, 웅어 고깃배,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거국가, 행주나루 독립운동 이야기 안내문, 행주서원 보기 등 다양한 볼거리도 있다. 특히 이곳에서 보는 한강의 낙조 (해넘이)는 예전부터 유명 했다. 넓은 주차장도 있고 잔디광장이 있고 곳곳에 그늘 쉼터가 있어 여름나기에 좋은 곳이다. 역사공원 내에는 독립운동가 양곡 이가순 선생의 송덕비가 고양시 향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50년에 세워진 송덕비는 3,1 만세운동, 고양지역 관개 사업에 큰 공적을 남긴 이가순의 생애를 적은 금석문 이다. 행주역사 공원의 동남쪽 끝에 위치한 이가순 선생 송덕비와 함께 고양 8현인 추강 남효온, 석탄 이신의의 시비, 그리고 석주 권필 선생의 시비도 세워져 있다.   무더운 여름, 고양시 곳곳에서 시원한 여름나기 명소를 추천 합니다. 적은 비용으로 가족들과 함께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고양(高陽) 600년 이야기

고양(高陽) 600년 이야기

고양(高陽) 600년 이야기   우리시 곳곳에는 “100만 행복도시, 600년 문화도시라 쓰여진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양시민을 비롯해서 서울 등 인근도시의 주민들도 600년이란 의미를 자주 묻곤 하십니다.   2018년도, 올해는 경기도라는 명칭이 생긴지 1,000년이 됩니다. 경기도 곳곳에서 이를 기리기 위해 다양한 문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105만 명이 살고 있는 고양시는 2013, 고양 600년을 맞이했습니다. 올해 2018년은 고양 605 주년이 됩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고양시는 고양 600년 문화도시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의 건립 추진을 비롯하여 책자의 발간, 교육 사업을 진행 하고 있습니다.   고양 600년은 수만 년의 역사 속에서 고양이란 도시의 명칭이 처음 생긴 것을 의미 합니다. 고양이란 이름은 조선 태종 13(1413) 323일 처음 만들어 졌습니다. 고양이란 이름이 만들어지기 전(), 고양시는 고봉(高峰)과 덕양(德陽)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고봉은 지금의 일산지역의 옛 이름이며 덕양은 현재의 덕양구와 비슷한 지역 이었습니다. 이 두 곳의 지명을 합쳐서 고양(高陽)이 된 것입니다.   고양이란 이름이 처음 만들어진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605년 동안 단 한 번도 그 명칭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무려 600년 넘게 고양이란 단일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결코 쉽지 않은 역사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물과 유적으로 볼 때 고양의 역사는 7만 년전(구석기 중기 시대)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현재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일대에서 구석기 유적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구석기 시대의 석기들이 대량으로 발굴되고 있습니다.    
2018년 고양시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선정된 동암 장효근

2018년 고양시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선정된 동암 장효근

2018년도 고양시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선정된 동암 장효근(張孝根) 독립운동가를 소개해 드립니다.     동암 장효근 (1867 - 1946)   생가 위치 :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147 주요활동 : - 1916년 손병희 선생 등과 함께 천도구국단 조직 3.1 운동의 터전을 마련 - 1919년 보성사 출판사의 총무 - 3.1운동 독립선언서 21,000매 인쇄배포, 체포되어 5개 월간 옥고를 지냄 - 천도교 경성교구장으로 여성교육, 일반교육운동, 구휼활동 전개 - 23.1운동 계획, 행주로 낙향 후 행주서원 기공사 중건에 기여 - 무기제조 등 무장투쟁 준비 중 해방되고 행주에서 1946년 서거   동암일기 : 장효근 선생이 1916년 부터 1945년까지 30년간 매일 쓴 일기 201858일 문화재청 독립운동 사료 (자료)로 지정 (등재) 등록번호 714   199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신 고양시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입니다. 고양시 문화예술과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학술발표회 등 여러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신도동 이야기

역사속으로 사라진 신도동 이야기

201871, 무려 112년 동안 사용되었던 덕양구 신도동(神道洞)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06924일 경기도 양주군에 있던 신혈면(神穴面)이 새롭게 고양군으로 편입되면서 신도라는 이름이 처음역사에 등장 한다. 새로운 행정구역의 이름을 지으면서 신혈면의 ()”자와 고양군에 있던 하도면의 ()” 자를 따서 신도면(神道面)이 된 것이다. 당시 신도면은 지금의 고양시 북한동, 효자동, 지축동, 오금동, 삼송동, 동산동, 용두동, 향동동, 화전동, 덕은동, 현천동을 비롯하여 현재의 서울시 은평구 지역인 진관내동, 진관외동, 구파발동을 관할하던 고양군 최대의 면()이었다. 신도면은 1980년대 중반까지 고양군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면적도 제일 넓은 지역 이었다.   당시 신도면의 면사무소는 지금의 구파발 전철역 서쪽에 있었다. 이후 197371, 신도면의 진관내리, 진관외리, 구파발리가 서울시로 편입되었고 신도면은 고양군에서 최초로 신도읍으로 승격되었다. 199221일 고양군 전체가 시로 승격되면서 신도읍은 신도동이 되었으나 명칭 변경으로 신도라는 이름은 처음 1906년에 만들어진 이후 112년 만에 행정동 명칭으로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신도동을 대신하는 새로운 행정동의 명칭은 삼송동(三松洞)으로 정해졌다. 2018년 7월 1일 신도동을 대신하여 삼송동이 이 지역의 새로운 행정구역 명칭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신도라는 명칭은 농협, 학교 등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양의 6.25 전쟁 이야기-남북한 주인이 네번 바뀌면서 큰 피해를 본 고양

고양의 6.25 전쟁 이야기-남북한 주인이 네번 바뀌면서 큰 피해를 본 고양

남북한 주인이 네 번 바뀌면서 큰 피해를 본 고양.   오늘은 6,25전쟁 68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1950625일 새벽에 시작된 전쟁은 인민군 진격로의 중심에 있던 고양시를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고양시와 파주 개성 등은 국군1사단이 방어를 담당했습니다. 사단 사령부는 지금의 수색(水色)에 있었지요. 북한군의 기습으로 국군은 낙동강 까지 밀렸고 UN군의 참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했습니다. 고양시 한강 행주나루로 한미해병대가 도강한 후 서울로 진격하여 9.28 수복을 합니다. 이때 고양시 지역도 행주산성, 정발산, 고봉산, 개명산, 화정배밭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미군과 국군, UN군은 경의선과 통일로를 보급로 해서 북진을 거듭해서 압록강까지 진출 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합니다. 특히 고양과 서울이 다시 북한군 치하에 들어갑니다. 이를 흔희 1.4 후퇴라 합니다.   서울에서 철수 하는 시민과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군이 해피밸리 전투를 치루고 고양시 박달산, 매봉, 고봉산, 대덕산, 만월산, 선유동 무명고지 등에서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최근 국방부 유해 발굴단 사업을 통해 50위 이상의 시신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물을 마시던 수통, 과자봉지, 총알, 탄띠, 수저 등도 유해와 함께 발견 되었습니다. 전쟁 후반기, 국군과 UN군은 다시 북진을 시작하여 고양을 지나 임진강, 철원, 양구 등에서 고지전을 벌이지요. 고양시 인근의 파주시, 강화 등에서 휴전회담을 앞두고 크고 작은 싸움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1953727일 한여름, 3년간의 전쟁은 휴전에 들어갑니다. 3년의 전쟁은 고양지역에 크고 작은 아픔을 주었습니다. 주민들 간의 반목, 수많은 고아들,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무기와 잔해들 전쟁의 결과는 참혹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고 20186월 현재는 양국 간 국가원수가 대화하는 등 평화와 통일의 분위기가 한껏 높아져 있습니다. 대결과 분열, 반목과 다툼에서 평화 통일, 자유와 번영의 길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시는 6,25전쟁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여 고양행신의 KTX 고속철을 타고 개성을 거쳐 평양과 신의주를 왕래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 봅니다.   사진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우리시의 대표적인 인물, 최영장군에서 유래된 도로 이름

우리시의 대표적인 인물, 최영장군에서 유래된 도로 이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일원에는 무민로(武愍路)란 도로가 있다. 서울과 문산을 연결하는 통일로 필리핀 참전 기념비 뒤쪽 최영 장군 묘소 부근에 무민로가 있다. 무민이란 이름은 고려 말의 유명한 장군이며, 충신인 무민공 최영장군의 시호를 따서 붙인 명칭이다. 최영장군과 같이 무신(武臣)으로서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에 큰 공적을 낸 인물에게는 무()를 붙이곤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무민공 최영 장군과 비슷한 예라 할 것이다. 최영장군 묘소 입구에서 시작되어 대자동 간촌 마을의 동헌로에서 마무리되는 무민로는 왕복 2차선의 넓지 않은 도로다. 도로 좌우에는 고양시에서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단풍나무 가로수가 그늘과 아름다운 단풍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민로 주변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자리해 있다. 우선 무민로의 유래가 된 최영장군의 묘소가 있으며 이 밖에도 세종대왕의 친 동생인 성령대군의 신도비와 묘소, 고양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경안군과 임창군 묘, 이성군 묘소, 성억 묘소, 김홍집 묘, 김주신의 신도비와 묘소, 그리고 고양시 최고의 한옥집인 고양 영사정 (永思亭)이 모두 무민로 주변에 있다. 이 무민로를 중심으로 좌우의 대자산 기슭에는 고양동 누리길 등이 있고 숲과 길, 문화유산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차량과 걸어서 이용하고 있다. 무민로의 동쪽, 대자산 아래에는 태종대왕의 아들은 근령군 이농의 무덤과 청백리를 지낸 경주김씨 김종순의 무덤도 있다. 건너편의 서쪽으로는 조선조 단종대왕의 누나인 경혜공주의 사당과 무덤도 현존하고 있다. 이 무민로 좌우에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무덤들이 줄지어 만들어져 있다. 대부분 조선시대의 왕손이거나 양반가의 묘소들이 군()을 이루고 있다. 무민로 주변의 다양한 묘소들을 그저 흔한 무덤으로 여기지 말고 각 시대별, 묘소와 신도비의 변천과정, 무덤에 묻힌 인물들에 대한 역사 이야기, 그리고 건강을 위해 힐링 걷기의 장소로 시민들이 많이 활용되길 바란다.   사진 1. 무민로의 유래가 된 최영장군 묘소 2. 무민로 인근에 있는 조선숙종 때 지은 고양 영사정 한옥 3. 조선조 양반가 묘소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김주신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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