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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아름다운 고양시에는 예술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로 지정된 분들이 있습니다.

금은세공 기술의 장인 ‘이효준’

(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3호 | 지정일 : 2005.02.07 )

금은세공 기술의 장인 이효준

금은장(金銀匠)이란 이름 그대로 금과 은을 이용해 장신구를 만드는 금은세공 기술의 장인으로, 삼국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해 고려와 조선을 거쳐 이어져 온 전통 금은세공 기술의 전승자입니다. 조선시대 금은장들은 나라에 소속돼 관청(官廳)에 세공품을 납품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왕조가 사라지면서 금은장들은 서울 광교천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함께 은방도가(銀房都家)를 열어 주전자, 화병, 비녀, 가락지, 방울, 노리개 등을 만들며 세공 기술의 맥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이왕직미술품제작소(李王職美術品製作所)를 거쳐 현재까지 우리의 전통 금은세공기술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2005년 2월 7일, 금은장 이효준이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68년 금은장 이선익 문하생으로 전통 금은 세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이효준 장인은 장신구 세공 기술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유명합니다. 2007년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제4회 세계도자비엔날레에 여러 작품을 출품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금은장

금은장과의 인터뷰 (2017.02.28 / 리포터 정동일문화위원)

언제부터 이 일을 하게 되었나요?

1967년도에 입문했습니다

금은공예에 처음 입문했을 때 어떤 분께 사사하셨나요?

故 이선익 선생님이라고... 뭐 지금 오래되었죠. 오래되었는데... 그분은 지금 안 계시고, 예전에 돌아가셨고.. 종로 예지동에서 제가... 배우기 시작했어요.

언제 화전으로 오시게 되셨는지..

한 80년도에 들어왔습니다.

그럼 처음 시작하셨을 때 나이는 어떻게 되셨나요?

제가 아마 열다섯 살 때인가, 열여섯 살 때 들어왔을 거예요, 아마..

그럼 그 이후로 다른 일 안 하시고 금은공예만 하신 건가요?

예.

금은장을 쉽게 설명한다면 어떤 분야인가요?

금은장이라고 하면 뭐, 우리가 쉽게 말하자면... 그 품목을 대충 얘기한다고 하면... 예전에 뭐 노리개나 비녀, 뒤꽂이... 뭐 이런, 쉽게 말하면 장신구, 여성 장신구 쪽으로 주로

많이 하는데, 그 분야를 벗어나게 되면 여러 가지가 다양하게 또 많아요. 그걸 또 다 해야만 하니까...

그걸 뭐... 꼬집어서 “이거다” 할 수는 없고, 좌우지간 그걸 다 할 줄 알아야 해요. 이게...

제가 이거 하는 거... 조금 넓어요, 이게 범위가. 넓다 보니까... 어느 한 가지 딱 품목만 해서 한다고 하면 나도 더없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네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장신구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장신구

주로 어느 나라 사람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가장 좋아하나요?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글쎄요, 제가 봤을 때는 일본 사람들이 조금... 보는 눈이 조금 이렇게 수준이 높다고 할까요?

제 작품들 이렇게 보면 감탄을 하고 좋다고 하죠.

그렇다면 비녀 같은 거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글쎄요, 물건에 따라 다른데... 뭐, 최소한 8시간에서 그 이상 시간 걸리는 것도 많고... 그렇습니다. 뭐 어떻게 딱 꼬집어서 몇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고...

특별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작품도 있나요?

그렇죠, (그런 것도) 있죠. 그거 뭐 있는데... 이제 노리개 같은 거 보면 간단한 것도 있지만

또 복잡하고 한 것도... 저기도 있어요 십장생 노리개 같은 거. 그런 건 다 금을 붙여서 다 쪼이로 조각을 해서 다 한 거기 때문에 그런 건 참 시간이 참 오래 걸려요.

금값과 은값에 따라 작품 가격도 오르나요?

금값이나 은값이 오르면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건 뭐 금값, 은값이 따로 올라가는 거기 때문에.. 우리 같은 경우는 뭐 공금만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금값 은값은 뭐 별도로 포함이 되는 거니까 그걸 가지고 어떻게... 더 많이 받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작업하는 모습

작업하는 모습

상장과 표창장이 많은데, 어떤 이유로 이렇게 많이 받으셨나요?

뭐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먹고살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열심히 해서 하나씩 출품되고 하니까... 그렇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후계자 양성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 예. 지금 우리 아들이 전수조교로 돼 있고... 지금 같이 계속 지금 영위를 하고 있습니다.

아드님은 공예를 전공한 건가요?

예. 금속공예과를 나와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드님도 이 일을 재미있어 하나요?

글쎄요, 재밌으니까 지금 하고 있지... 아니면 하겠습니까?

든든하시겠어요?

아, 예. 든든하죠.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글쎄요, 뭐... 보람 같은 건... 오늘날 이렇게 많이 또 찾아주시고...

여러 분들이 찾아주니까 좋네요.

2005년 02월 07일 경기무형문화재 제43호 금은장으로 지정된 이효준 선생우리 고양시의 진정한 보석 중 한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