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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향토문화유산

2017-03-20

월산대군묘 및 신도비 전경

지정번호 : 향토문화재 제1

소재지 :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산16-35

월산대군의 묘는 신원동 능골에 자리잡고 있으며 뒤에 부인 순천 박씨의 봉분을 두었습니다. 월산대군의 큼직한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 문인석, 망주석, 장명등과 신도비 등의 석조물이 배치되어 조선 시대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상석 뒤편의 묘비는 운문이 조각된 비두와 장방형의 대석을 갖추었고, 규모는 높이 180cm, 74cm, 두께 32cm입니다. 상석은 3매의 장판석을 놓았는데 270cm, 측면 155cm의 규모입니다.

월산대군의 묘는 석마, 석양, 석호 등이 없을 뿐이지 흡사 왕릉처럼 듬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성종이 친형인 월산대군을 극진히 아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풍족했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월산대군 묘의 앞으로는 묘갈과 상석, 장명등이 굳건히 서있고 커다란 망주석과 석인이 그 양쪽을 지키고 있습니다. 모두 묘소 조성 당시의 유물 그대로입니다. 묘소의 뒤쪽으로는 월산대군의 부인인 승평부부인 박씨의 묘소가 있는데, 연산군의 큰어머니이며, 어머니를 일찍 보낸 연산군에게 실질적인 어머니 역할을 한 여인입니다. 하지만 연산군이 그녀를 너무 따랐던 나머지 인수대비에게 연산군과 통정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사를 당하는 비운의 여인입니다.

월산대군 신도비는 신원동 능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월산대군과 박씨 부인 묘소 앞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종 20(1489) 왕명에 의해 세워진 이 비는 크게 대좌, 비신, 이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좌에는 비신을 꽂을 수 있도록 비좌가 만들어져 있고 연꽃무늬가 돌아가며 새겨져 있습니다. 비신의 비문은 풍우로 인한 마모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 판독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또한 비신의 윗부분에는 달과 산을 표현한 전자가 새겨져 있는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비신의 높이는 218cm, 105cm, 두께 32cm의 규모이고 비문은 임사홍이 짓고 썼으며, 전액도 함께 썼습니다. 비신과 연결된 이수에는 매우 화려하게 용조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앞면에는 좌측의 아랫부분 용이 위를 올려다보고 있고, 우측 윗부분의 용은 아랫부분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두 마리의 용 주변에는 구름무늬가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월산대군 이정은 1454년에 태어나 35세의 한창 나이에 사망한 왕족입니다. 추존왕 덕종의 장남이며 성종의 친형으로 자는 자미이며 호는 풍월정입니다. 세종이 증조부되시며, 세조가 조부입니다.

하지만 이정은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장자이며 나이도 왕자를 이어가기에 적당하였던 그는 왜 왕위를 받지 못하였을까요?

그는 7세 때인 1460년 월산군에 봉해졌고, 1468년 동생인 자을산군과 함께 현록대부에 임명되었습니다. 예종은 즉위한 다음해에 사명하였고 왕위는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 덕종의 아들인 월산군과 자을산군 중 한명으로 압축되었습니다. 이에 세조비인 정희왕후는 세조의 명을 받들어 제안대군은 너무 어리고 월산군은 건강이 좋지 않으니 됨됨이가 빼어난 자을산군에게 왕위를 이어가게 하였고, 예종이 사망한 바로 다음날 즉위식은 거행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자을산군의 왕위계승이 다른 이유에 의해서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월산대군의 건강이 나쁘다는 근거가 남아있지 않고, 자을산군 역시 제안대군처럼 어렸기 때문입니다. 나이도 어리고 장자도 아닌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른 것은 그의 장인이 한명회였기 때문입니다. 한명회는 신숙주 등과 함께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고, 성종을 즉위시킴으로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권력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왕이 되지 못한 제안대군과 월산대군은 이제 역적으로 몰릴 상황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왕이 되지 못한 왕세자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일은 역사 속에서 수 없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두 남자는 결코 미련하지 않았습니다. 제안대군은 정말 바보처럼 행동해서 역모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월산대군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풍류객처럼 보여서 일생을 유유자적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풍월정이라는 그의 호에서 그의 인생이 묻어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