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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향토문화유산

2017-03-27

고려말•조선초기의 청백리, 기건선생 묘

기건 선생의 묘는 원당전철역에서 한양골프장 방향인 성사동 사근절 마을에 서향하여 위치하고 있습니다. 묘는 정부인 풍산 홍씨와 합장되어있으며 총 규모 21m 둘레의 원형묘입니다. 봉분의 우측으로는 1966년에 새로 세운 오억령이 찬한 묘비와 최근 후손 기성도가 찬하고 세운 한글비가 세워져있습니다. 묘소에서 약 300m 지점 아래에 위치한 신도비는 고종 16(1879) 10월 건립한 것으로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의 통대석 비좌를 갖추었으며 비신은 대리석입니다. 신도비 구비는 신비의 앞마당에 놓여 있습니다.

기건 선생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공조전서 면의 아들로 1390년에 태어나 1460년에 돌아갔습니다. 호는 청파 또는 현암이며 녹은 청백리로 본관은 행주입니다. 천성이 청렴, 강직해씅며 독서, 학문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종 24(1442) 평민에서 발탁되어 음사로 지평이 된 후 병조, 형조, 이조의 참의를 거쳐 관찰사, 대사헌 등을 역임했으며 문종 원년(1451) 개성부 유수를 거쳐 단종 원년(1453) 대사헌이 되었습니다. 그간 외관으로 연안, 제주,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 후 벼슬이 중추원사에 이르렀으나 세조가 즉위하면서 모든 관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세조가 다섯 차례나 그의 집을 찾았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시호는 정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