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일 오후였지만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의 전시실은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특히 단체로 관람을 온 고등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이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빙고판 미션을 들고 작품을 찾으며 즐겁게 웃는 모습은, 미술관이 청소년에게도 자연스러운 학습 공간이 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낮시간에 고3 수험생들이 많이 방문한다는 안내자의 말처럼, 이 전시는 단순한 예술 감상이 아니라 ‘배움의 경험’을 제공하는 현장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날 제가 이 전시를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정규 도슨트 해설 프로그램이 시민의 예술학습과 평생교육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전시는 이미 큰 관심을 끌고 있었고, 오후 3시 정규 도슨트 타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모여 있었습니다. 샤갈에 대한 대중적 호감도뿐 아니라, 해설을 통해 작품을 ‘배우고 싶다’는 시민의 욕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샤갈의 세계를 열어주는 해설: 사랑·기억·상징의 구조를 배우다
도슨트는 먼저 샤갈을 ‘색채의 마술사’로 소개하며, 이번 전시가 그래픽 아트, 특히 석판화와 삽화에 초점을 맞춘 특별한 기획임을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보기 어려웠던 300여 점의 원화가 전시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람객들은 큰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샤갈의 꽃·연인·파리 등 반복되는 이미지들이 그의 생애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간단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유대인 차별, 전쟁, 망명이라는 현실은 고통스러웠지만, 그의 그림이 따뜻한 이유는 사랑과 기억을 근원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픽 아트 제작 방식도 흥미로웠습니다. 도슨트는 석판화가 한 색씩 찍어내는 방식이며, 작품 하단의 에디션 번호, 작가 서명, pour(~에게), H.C.(Hors Commerce, 비판매용) 같은 표식의 의미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해설 덕분에 관람 중 발견한 ‘épreuve d’artiste(작가 소장용 작품)’ 표기를 스스로 해석해 볼 수 있었던 것도 배움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삽화 연작 역시 핵심을 짚어 주었습니다. 총 42장의 석판화가 10년에 걸쳐 제작되었고,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수십 장의 종이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작품 한 장의 ‘밀도’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중반부에는 샤갈의 꿈과 상상력을 담은 서커스 그림이 소개되었습니다. 도슨트는 샤갈이 서커스를 화려함 뒤의 외로움과 슬픔까지 함께 본 화가였음을 짧지만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물고기, 바이올린, 동물 머리처럼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상징들이 사실은 그의 어린 시절, 유대인의 문화, 가족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경 삽화와 고골의 <죽은 영혼들> 삽화는 샤갈의 영성과 문학적 감수성을 연결해 보여주는 지점이었습니다. 그의 본명 ‘모이셰(모세)’에서 유래한 종교적 뿌리, 특정 종교를 넘어서 보편적 인간 영성에 다가가려 했던 그의 태도 등이 간단히 요약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리와 여러 도시를 방랑하던 그의 모습은, 한 도시에 속하지 못한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말년에 생폴드방스에서 제작한 <오디세이아> 연작은 고난과 방랑 끝에 찾아낸 그의 예술적 평온을 상징했습니다.
도슨트의 설명은 과하지 않고, 관람객이 작품을 ‘해석할 실마리’를 얻도록 돕는 데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전시 해설을 통해 배운다는 것: 개인적 경험의 전환
저는 평소 전시회에서 도슨트나 오디오가이드를 거의 듣지 않습니다. 미술사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내 방식대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날 경험은 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작품을 보기 전에 배경과 맥락을 듣고 나서 다시 보는 순간, 그림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도슨트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상징, 읽어내지 못했을 서사, 작품 제작의 기술적 맥락 등은 제 감상을 한층 넓혀주었습니다.

특히 전시장에 놓여 있던 <다프니스와 클로에> 책을 보며, 그 삽화의 원화를 눈앞에서 확인한 순간이 가장 깊게 남았습니다. 도슨트 해설을 통해 “이 장면이 바로 그 삽화의 원화”라는 사실을 즉시 알아볼 수 있었기에, 작품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책 속 세계가 실재로 걸어 나온 듯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배움은 때때로 감상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전시 해설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관람객의 감상을 확장시키는 또 하나의 학습 도구였습니다. 이 경험은 ‘예술 감상도 충분히 평생교육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고양시 평생교육에서 미술관이 하는 역할: 구조의 변화와 접근성의 확장
이번 전시는 고양시 평생교육의 의미를 여러 층위에서 보여주었습니다.
1.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의 전시 수준의 비약적인 성장
2010년대 초반 아람누리·어울림누리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제 경험과 비교하면, 지금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이 선보이는 전시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단계에 올라와 있습니다. 과거에는 해외 유명 작품을 지역 미술관에서 보기 어려웠지만, 이번 전시처럼 희귀한 샤갈 원화 300점을 한 도시 미술관에서 만난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는 고양시가 문화적 플랫폼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2. ‘교육으로서의 전시’ 운영 구조
정규 도슨트 해설뿐 아니라 주말 스페셜 도슨트까지 활발히 운영되며, 다양한 방식의 해설 교육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는 미술관을 단순 전시장이 아닌 학습의 공간으로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평생교육적 가치가 큽니다.

3. 시민의 예술 접근성 확대: 고양시민 할인 + 예경지원 혜택
저 역시 관람료를 결제할 때 고양시민 할인과 예술경영지원센터 미술전시 관람료 지원사업 혜택을 통해 할인된 금액으로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이는 경제적 접근성을 높여 더 많은 시민이 부담 없이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정책적 장치입니다. ‘누구나 예술을 누릴 수 있는 도시’라는 고양시의 목표가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무리하며
도슨트 해설을 듣고 전시를 본 이날의 경험은, 제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예술 감상의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배움이 감상을 확장시키고, 해설이 작품을 개인의 삶과 연결해 주는 힘을 체감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그것도 시민 할인과 국가 지원 혜택을 받으며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고양시 평생교육의 현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고양시가 앞으로도 이런 양질의 문화예술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마련해, 시민 누구나 예술을 가까이에서 배우고 즐길 수 있는 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전시는 그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글 | 정수민 사부작 사부작 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