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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행주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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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수위관측소

행주수위관측소

행주수위관측소는 193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시설물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한강의 수위를 관측하던 곳입니다. 이제는 수위 관측이라는 본래의 역할은 다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잠시 조용히 쉬어갈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행주성당

행주성당

  건물이든 물건이든 한 세기, 그러니까 100년간 제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1910년에 지어진 고양 행주성당은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1900년대 초반의 건물을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요?
행주서원

행주서원

행주서원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조선시대의 명장인 권율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으리으리한 건물도, 입이 딱 벌어질 규모도 아니지만, 이 작고 소박한 서원에서 권율 장군의 용맹함과 지략, 충정과 기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데이트 코스나 가족 나들이에도 더 없이 좋은 곳이니 잊지 말고 찾아보세요.      
독립운동가 양곡 이가순송덕비

독립운동가 양곡 이가순송덕비

양곡 이가순 송덕비는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행주산성 역사 공원 안에 자리해 있습니다. 본래 지금의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250m 떨어진 행주 양수장 내에 있었으나 2016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습니다. 비석 앞면에는 이공 가순 관개 송덕비라 쓰여 있는데 하단부에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총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비문의 뒷면에는 비석의 건립년도와 이가순, 이원재 선생의 공적과 세운 사람들의 명단 등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내용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며 관개, 수리의 개척자인 양곡 이가순 선생과 그의 아들인 이원재의 공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중 이가순 선생은 본래 황해도 출신으로 186711월 출생하여 1943412일 돌아간 인물입니다. 이가순 선생은 본관이 완산인데 당시 고양군 지도면 토당리 삼성당 마을에 정착하여 현 농어촌기반공사 설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입니다. 양곡 이가순 선생은 청년 시절부터 만주와 연해주 등을 오고가며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19년 원산 감리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3.1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원산에 대성학교와 신간회 원산지회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독립운동의 주도자가 되어 옥고를 치룬 후 고양군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고양군으로 이주한 뒤 고양군 지도면 등의 토지가 한강에 제방이 없고 갈대밭과 갯벌, 가뭄에 취약하여 마치 황무지와 같았습니다. 이에 이가순 선생은 자신의 사재로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고 수리시설과 관개사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리사업을 주관 하던 중 1943년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이원재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양군수리조합을 건립하게 됩니다. 201011월 자랑스러운 고양인으로 이가순 선생을 선정하여 이가순 선생과 이원재 선생의 공적을 기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고양시에서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양수장 내의 이가순 선생 송덕비를 많은 시민들이 볼 수 있는 고양 행주산성역사공원으로 이전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고양멱절유적(고양멱절산유적)

고양멱절유적(고양멱절산유적)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195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법곳동 740-22 이곳이 멱절산으로 불리는 유래는 이곳에 계셨던 사찰의 스님이 메기를 잡아먹은 후 절이 망했다고 해서 메기절이라고 불리다가 멱절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예전에는 곽산이라고 불리다가 '곽'이라는 글자가 미역을 의미해서 미역절, 멱절로 불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멱절산은 50m 남짓의 나지막한 산으로, 예전에는 인천과 강화를 통해 왕래하는 나룻배가 반드시 여기를 거쳤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멱절산의 바위는 밀물에는 없어지고 썰물 때는 나타난다고 하는데 실제로 제방이 축조되기 전에는 이곳 법곳동은 섬이었습니다. 제방이 생겨 더 이상 한강물이 들어오지 않으니 육지가 된 셈이지요. 또한 이곳에 있던 이산포는 행주나루와 더불어서 고양시의 중요한 포구 중 하나였습니다. 멱절산유적은 고양시에서 최초로 발굴조사된 한성백제시대 유적으로 현재까지 조사된 유구는 수혈주거지 8기, 수혈구덩이 2기, 구상유구 1기, 적석유구 5기, 근래에 조성된 수혈구덩이 9기, 민묘 5기입니다. 모두 백제인들이 만든 집들과 건물들의 흔적으로 보입니다. 멱절산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중국의 토기와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등 한성백제의 수도에서 출토되는 토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특징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멱절산 유적이 한성백제가 중국 본토와 직접적인 교류를 했다는 증거를 제공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한강 지역 상황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행주산성

행주산성

행주산성은 고양시 덕양산 정상에 축조된 산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행주대첩’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용맹한 장군이나 병사들만이 아닌 관군, 승병, 의병, 백성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승리이기에 더욱 값졌던 행주대첩. 바로 그 현장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목숨을 내던진 선조들의 혼을 느껴보세요.  
행주대첩비

행주대첩비

행주대첩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비가 바로 행주대첩비입니다. 세월의 흐름 앞에 파손되고 손실되어 두 번의 재건을 거쳤으니 처음 세워졌던 비석과 형태는 다르겠지만, 그 안에 흐르는 선조들의 뜨거운 충정과 애국심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행주대첩비를 찾아 선조들의 공을 기리며 짧은 묵념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하천과 마을

하천과 마을

하천과 마을                
한강 전경

한강 전경

한강 전경            
한강과 농경

한강과 농경

한강과 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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