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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향토문화유산

2017-03-28

권희선생 묘

지정번호 : 향토문화재 제38

소재지 :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산60-6

권희 선생 묘는 원당 전철역 남쪽의 성사동 불당골 마을 안에 진한국대부인 한씨와 합장되어 위치하고 있습니다. 묘소에는 묘비, 장명등, 상석, 고석, 향로석, 문인석 2쌍이 있으며, 최근에 오석의 비석과 망주석 1, 문인석 2쌍을 그 앞쪽에 갖추어 놓았습니다.

봉분은 본래 고려조·조선조 초기의 보편적인 사각묘였으나 현재는 새로이 단장하여 옛 모습이 변형되었습니다. 봉분 앞에 세워진 화강암 재질의 묘비는 높이 83cm, 33cm, 두께 14cm의 규모인데 묘비의 윗부분은 다듬어 마름모꼴로 만들어 세웠습니다. 이런 형태의 묘비는 조선 초기에 많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묘비의 앞면에는 조선정승정간공 권희지묘 진한국 대부인 한씨 장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정통기사라 기록해 세종 31(1449)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묘비의 우측으로는 높이 127cm의 장명등이 위치해 있는데 화장은 두 개로 옥개석의 조각 수법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구조는 사각의 화사석 위에 사각형 옥개석을 얹은 형태입니다. 장명등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석물이 보이는데 장명등의 부재로 판단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현재 서 있는 장명등이 세워지기 전에 있었던 원래의 장명등일 가능성이 있으며 비슷한 부재가 고려고양왕릉에서도 보입니다.

상석, 고석, 향로석 좌우에 세워진 문인석은 15세기 중엽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총 높이 110cm에 관모를 쓰고 홀을 두 손으로 받쳐든 조선 전기의 일반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몸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며 홀과 턱이 일정하게 떨어져 있고 땅속에 묻힌 부분과 아래쪽이 왜소해지는 점 등이 조선 전기의 문인석에서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문인석의 얼굴에서는 눈이 크고 광대뼈가 불룩 튀어나와 험상궂은 모습으로 보이며 팔굽에서 수평선 위쪽으로 굽혀진 손의 처리가 깊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묘소 주위에는 이밖에 최근에 세워진 문인석과 신도비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권희 선생 묘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들에서 많이 보이는 풍자적이고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희는 고려말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충숙왕 6(1319)에 출생하여 조선조 태종 5(1405)에 사망한 인물입니다. 본관은 안동으로 검교시중 권고의 아들이며 조선 전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인 양촌 권근의 아버지가 됩니다. 음보로 관직에 기용되어 홍주도병마사 등 여러 벼슬을 거쳐 문하찬성사에 이르러 영가군에 봉해졌고 조선조에 들어와 태조 2년 검교문화시중으로 개국원종공신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