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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향토문화유산

2017-03-27

신도비가 멋진 문화유산, 한계미선생 묘

한계미 선생 묘는 관산동 시묘골 마을의 청주한씨 묘역에 위치하며 왼쪽에 파평 윤씨가 합장되어있는 단묘입니다. 우측에는 1972년에 건립한 묘비가 있고 봉분 앞 중앙에는 당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백대리석 묘비가 세워져있습니다. 한계미선생의 신도비는 묘소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종 2(1471) 12월에 세운 것으로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으며 비각은 최근 새로 지은 것입니다. 한계미(1421~1471)는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공보, 본관은 청주로서 관찰사 혜의 아들입니다.

한계미 선생은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의 언니와 결혼하였으며 세종 20(1438) 음보로 사용이 되고 그 후 나주 판관, 형조도관좌랑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문종2(1452)에 사은사로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5년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자 좌익공신 3등으로 지사간원사가 되고 이어 동부승지, 우승지를 거쳐 형조, 호조의 참판사로 부임하고 이시애의 반란 때 평안도의 정병을 이끌고 가서 평정에 힘써 적개공신 3등으로 우찬성에 올랐습니다. 이어 좌찬성으로 이조판서를 겸임하였고 성종 1(1470) 서원부원군에 진봉되고 이듬해 좌리공신 2등에 책록되고 영주충부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