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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향토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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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순선생 신도비

민순선생 신도비

민순선생 신도비는 묘소 아래 50cm에 있으며 문인 홍가신이 짓고 글씨는 김현성이 썼으며 전자(篆字)는 노직이 썼습니다. 흰대리석으로 된 이 비의 규모는 높이가 220cm, 80cm, 두께 25cm이며, ‘習靜先生閔公墓碣銘(습정선생 민공묘갈명)’이라는 전자(篆字)만 확인될 뿐 비문은 판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멸이 심합니다.  
묘비
민순선생묘

민순선생묘

민순 선생 묘는 현천동 거무내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배() 숙인 평양 조씨, 숙인 전주 이씨와 함께 3기의 봉분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민순의 봉분 앞에는 通訓大夫通禮院右通禮習靜先生閔公之墓(통훈대부통례원 우통례 습정선생 민공지묘)’라고 쓰여진 묘비가 있으며 우측에 오석의 묘표가 1983918일 종중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민순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문봉 서원에 제향된 고양 8현의 한 사람입니다. 중종 14(1519)에 출생하여 선조 24(1519)에 돌아갔습니다. 자는 경초, 호는 행촌, 또는 습정으로 본관은 여흥입니다. 처음에는 낙봉 신광한에게 글을 배운 뒤 화담 서경덕을 찾아가 그의 문인이 되었으며 향시에 장원을 하였습니다. 선조 초 효행으로 조정에 알려져 효릉 참봉으로 발탁되었으며 그 위 공조정량, 예빈시정, 통례원 예통 등에 임명되었으나 학문에 정진할 수 없다하여 모두 사퇴하고 향리에서 후진 교육과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였습니다. 특히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장사랑공이 창병을 앓자 밤낮으로 간호하며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상을 당하여 예를 준수하므로 보는 이마다 감동하였다고 합니다. 75세에 행주리 자택에서 돌아갔으며 개성의 화곡서원과 고양 문봉 서원에 제향되었습니다.  
민묘
조선전기, 사각형 모양의 봉분, 이천우선생묘

조선전기, 사각형 모양의 봉분, 이천우선생묘

지정번호 : 향토문화재 제7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산203 이천우 선생의 묘는 중산마을에서 봉일천 방향으로 이어진 86번 지방도로(고봉로)의 좌측 성석동 상감천 황룡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방형묘로 정경부인 여흥 민씨와 합장되었고 봉분은 20평 정도이며 길이 30m의 곡장을 조성했습니다.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과 1979년에 세운 묘비, 그리고 좌우에는 문인석을 배치했고 4단의 계단석을 놓았습니다. 이천우(?~1417)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태조 이성계의 형인 이원계의 아들로 고려말 공민왕 18(1369) 동령부의 수령으로 있다가 이성계의 휘하에 들어가 몇 차례 왜구를 물리쳤으며 1392년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웠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천우가 퇴직할때(1416) 태종은 '경이 큰 공을 세웠는데 아직 보답을 못하였으니 좋은 논 80결과 노비 80명을 상으로 내리노라.'하였는데 이천우는 극구 사양하면서 '저 손토시 위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매를 저에게 주십시오.'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태종이 매사냥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이천우는 매사냥 때문에 정사에 소홀하시면 안된다는 충고를 간접적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태종은 웃으며 청을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민묘
행주기씨 비석들

행주기씨 비석들

행주기씨 비석들              
묘비
경안군 및 임창군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

현재 경안군의 묘는 분성군부인 허씨의 묘와 합장되어 있는데 다른 묘에 비해 높은 묘역을 만들었습니다. 묘 둘레의 뒤편은 후대에 증축된 것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의 곡장으로 조성되어있으며 묘 앞 우측에는 朝鮮國 王孫 贈顯祿大夫 慶安君 兼五都衛都府總官 行承憲大夫 慶安君 諱檜之墓 盆城郡夫人 許氏夫左(조선국 왕손 증현록대부 경안군 겸오도위도부총관 행승헌대부 경안군 휘회지묘 분성군부인 허씨부좌)’라 새겨진 묘비가 있습니다. 묘비는 숙종 30(1704) 3월 건립한 것으로 이수와 장방형 비좌를 갖추었고, 총 높이는 196cm, 두께는 26cm의 규모입니다. 임창군의 묘는 응천군부인 박씨와 합장되어 있으며 봉분의 주위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과 망주석, 문인석이 1쌍 씩 있는데 특히 장명등은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 하여 당시에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경안군 및 임창군 묘는 최영장군 묘역 입구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데 뒤쪽 언덕에 경안군묘소가 있고 언덕 아래쪽 30m 지점에 임창군 묘소가 있습니다.  
민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
민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

경안군 및 임창군묘
민묘
이성군묘 원경

이성군묘 원경

이성군묘 원경
민묘
이성군묘 안내판

이성군묘 안내판

이성군묘 안내판
민묘
이성군묘 사당

이성군묘 사당

이성군묘 사당
문화재자료
이성군묘 사당

이성군묘 사당

이성군묘 사당
문화재자료
이성군묘

이성군묘

이성군의 묘는 1번 국도인 통일로 필리핀 참전비에서 최영 장군묘로 들어가는 도로로 700m 진행하여 왼편 구릉에 있습니다. 봉분 앞에는 묘비가 서 있으며 봉분의 총 둘레는 17cm입니다. 묘역의 석물로는 묘 앞 중앙에 상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등이 각기 배치되어 있으며 이성군의 봉분을 중심으로 곤산군부인 남평 문씨와 풍산군부인 안동 권씨의 봉분이 좌우에 있습니다. 명종 11(1556)에 세운 대리석의 묘비는 왕자이성군 증시장평공지묘라 쓰여져 있는데 장방형의 비좌에 정교하게 조각된 이수를 갖추고 있으며 비문은 정사룡이 짓고 송인이 글씨를 썼으며 한경우가 전자를 썼습니다.    
민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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