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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문화유산 | 중국으로 가는 길목, 의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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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0

연산군의 폭정을 현장에서 확인하다, 연산군 시대 금표비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88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10-2

연산군은 고양시와도 인연이 아주 깊습니다.

월산대군의 부인인 본인의 큰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고양시 일대를 자신의 놀이터로  쓰기 위해 본인 말고는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때를 말해주는 생생한 기록이 바로 연산군시대 금표비입니다.

16세기 초 연산군 때에 와서 고양군 일대는 황폐화되었습니다.

연산군 10년(1504) 가을에 왕의 놀이와 사냥을 위해 도성 밖의 민가를 모두 철거하고,

또한 한성으로 통하는 도로는 노량진 방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막아 일반백성의 교통을 차단한 것입니다.

삶의 터전에서 추방되어 노비로 살게 된 백성들의 원망은 점점 커지고, 고양군은 혁파되어 양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강화로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고 중종이 즉위하자,

연산군의 폐정을 개혁하는 한편 고양군 등 각 군이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연산군시대 금표비는 연산군시대에 고양군 지역을 혁파 (革罷)하고 백성들을 모두 내 쫓은 후 유흥을 위해

통행금지 구역을 정한 것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서울과 의주를 연결하던 의주로변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는 비석입니다.

연산군의 금표비는 고양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유일한 비석입니다.

금표비의 앞면에는 금표구역에 들어온 사람은 재판 없이 목을 쳐 죽인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특히 1504년부터 1506년까지 고양지역은 완전히 없애 버리고 주민을 살지 못하게 하였으며 이를 어긴 사람들은 삼족을 멸할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금표비는 연산군의 폭정(暴政)을 현장에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