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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2021-06-11

명나라 여인 굴씨(屈氏) 묘 이야기

우리시 덕양구 대자동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중국 명나라, 청나라가 교체되는 시기의 이야기로 여기에 조선까지 포함하여 동아시아 3국의 이야기로 구전되고 있지요..

고양시 대자동 대적굴 마을에는 중국 명나라의 궁녀 굴씨 묘소가 남아 있습니다. 묘소 우측에 비석이 세워져 있어 역사적 사실 임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굴씨는 명나라에서 태어나 오랑캐라 불리던 청나라에게 조국이 멸망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으며 결국 그녀도 청나라의 강요에 의해 청나라의 궁녀가 되었습니다. 조국을 사랑하는 의지가 강해 청나라의 왕자나 신하들의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명나라의 절개를 지킵니다.

그러다가 조선에서 잡혀온 인조의 큰 아들 소현세자를 만나고 청나라 심관에서 그를 극진히 모십니다. 소현세자는 이곳에서 아담 샬 등을 만나면서 서양의 문물, 선진적인 세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후 볼모에서 풀려난 소현세자는 굴씨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소현세자는 세자로서 열심히 정치를 하였으나 귀국한지 3개월 만에 죽게 됩니다. 일부에서는 독살설도 이야기 합니다.

모시던 주인,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죽자 중국에서 온 궁녀들과 신하들은 중국으로의 귀국령이 내려졌음에도 굴씨는 오랑캐 나라인 청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남게 되지요.

그리고 소현세자의 손자인 임창군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키우게 됩니다. 평소 비파연주에 탁월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으며 새나 동물을 신비스럽게 다루는 재주도 남달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지요.

소현세자가 죽은 후에는 줄곧 자수원 이란 곳에서 살면서 명나라의 상투 만드는 법등 예법을 전해주고 중국 청나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했습니다.

 

굴씨는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는데

 

청나라 오랑캐는 나의 원수요. 내 생전에 청나라 오랑캐의 멸망을 보지 못하고 죽게 되었지만 행여라도 북벌의 기회가 있다면 내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오. 허니 내가 죽거든 청나라를 정벌하러 가는 서쪽 교외에 묻어다오.” 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명나라 여인 굴씨의 청나라에 대한 분노와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70세 였다고 전해집니다.

일설에는 조선에서 청나라로 보내야 하는 공녀들의 인원을 줄이는데 기여했다고 합니다.

굴씨의 묘소는 유언대로 중국과 조선을 연결하는 길가 대자동에 현재 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잔디가 자라지 못하는 붉은 무덤으로 유명합니다.

굴씨 묘소 부근에는 소현세자의 아들과 손자, 증손자 등의 묘가 있는데 이중 경안군과 임창군은 고양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진설명: 명나라 궁녀 굴씨의 묘소, 묘소에 잔디가 없는 붉은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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