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서원

주요정보

  •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행주산성로 127-17
  • 종목 : 문화재자료 제71호(경기)
  • 지정일: 1985년 9월 20일
행주서원

행주서원은 1842년에 세워졌으며, 행주대첩을 이룬 충장공(忠莊公) 권율(權慄, 1537~1599) 도원수의 전공을 기리고 호국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왕명으로 건립된 사액서원이다.
사당 건립의 동기는 조선 후기 헌종임금이 고양지역 왕릉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고양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이때 영의정이던 조인영이 임진왜란 당시 권율의 공을 아뢰며 사당을 세워 무공을 기릴 것을 간청하자 이를 쾌히 승낙하면서부터이다. 일 년 후 사당이 완공되고 사당 이름은 ‘기공사(紀功祠)’라 하였다. 위치는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 아래 한강을 바라보며 남향하여 세워졌다. 기공사는 권율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으나 점차 후학을 가르치는 서원의 기능이 더해져 교육기관으로의 역할도 하게 되면서 그 명칭이 ‘행주서원’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 약 20여 명의 원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1871년)에도 살아남은 유일한 고양지역의 서원이었으나 오랜 세월 동안 한강의 범람 등으로 건물이 훼손되어 보수와 중수를 거치다 한국전쟁 때는 사당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후 1988년부터 부분적으로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1999년에 이르러서야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당초 기공사는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배향 사당이었으나 행주대첩 당시 함께 싸웠던 권율 장군 휘하 장수들의 공을 기리며 2008년부터는 부원수 선거이, 조방장 조경, 선무사 변이중, 경기수사 이빈, 충청수사 정걸, 의승장 처영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배향하고 있다.
서원의 행주대첩비는 기공사가 건립된 후 1845년(헌종11년)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에는 행주산성 내의 행주대첩비(초건비) 내용과 기공사 건립과정이 추기로 기록되었다. 이 비석은 행주서원이 복원되기 이전 1970년대 행주산성 정화사업으로 조성된 행주산성 내 사당 충장사로 옮겨졌다가 2011년에 다시 현 위치로 옮겨왔다.
현판은 1882년 조선 후기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던 신헌(申櫶)이 예서체로 1933년 중수기문 및 한시 현판들과 함께 별도 보관되고 있다. 제향은 봄·가을에 춘향제, 추향제를 올리고 있다.
또 하나의 권율 사당으로는 행주산성 내에는 1969년 건립한 충장사(忠莊寺)가 있다.

건물규모

행주서원 건물규모에 대한 목록표이며 명칭, 규모, 용도 정보 제공
명칭 규모 용도
사당 28.8m(8.71평) 배위 및 제향
강당 46.86m(14.18평) 강연 및 문화체험프로그램 운영
전사청 33.6m(10.16평) 제향 물품 보관
방3개 30.57m(9.25평) 문화체험프로그램 운영 및 기타

배향선현

행주서원 배향선현에 대한 목록표이며 성명, 본관, 생몰일, 직위 정보 제공
성명 본관 생몰일 직위
권율(權慄) 안동 1537~1598 선무공신1등, 도원수, 충장공
선거이(宣居怡) 보성 1550~1598 선무원종공신1등, 팔도병마절도사
조경(趙儆) 풍양 1541~1609 선무공신3등, 조방장, 한성판윤, 회령부사
변이중(邊以中) 황주 1546~1612 소모사, 조도사, 독운사, 함안군수
이빈(李蘋) 전주 미상 경기수사, 전라수군절도사
정걸(丁傑) 압해 1514~1597 충청수사, 전라수군절도사
처영(處英) 미상 미상 국일도대선사부종 수교보광헌량뇌묵

최종수정일 : 2018-11-27 17: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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