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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역사 1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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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

단종대왕의 시신을 찾아 능으로 모신 충신, 박충원

 

 

 

 

 

 

우리시 덕양구 주교동 능골 (원릉역 부근) 마을에는 수 십 만평의 산과 많은 무덤이 있는 밀양박씨 선산이 있지요.

 

 

이곳을 능골 이라 부르는 것도 현재 시청이 있는 배다리 마을에서 보았을 때 박씨들의 무덤들이 마치 왕릉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진 이 밀양박씨 무덤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양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묘가 박충원 선생의 신도비와 묘입니다.

 

 

2기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한 박충원의 무덤은 박충원 선생과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 성산이씨가 나란히 묻힌 쌍분입니다.

 

 

박충원 (朴忠元, 1507-1581) 선생은 조선조 중기의 문인으로 어린시절부터 고양팔현의 한분인 복재 기준(奇遵) 선생에게 학문을 배운 인물입니다.

 

 

문과에 급제하고 정자, 교리, 영월군수 등을 엮임했고 그 후에는 대사헌. 대제학, 이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지냈죠.

 

 

현재 강원도 영월에 가면 단종대왕의 장릉이 있는데 능 입구에 박충원 선생의 충절비 (송덕비)가 세워져 있지요.

 

 

이곳에 충절비가 세워진 이유가 재미 있어요..

 

 

단종대왕이 영월에서 억울하게 죽은 후 그 시신은 거두지 못하게 하여 영월서강 (일명 주천강) 청령포 앞에 버려지게 되죠..

 

 

백성들은 바라보기 만 할 뿐 죽음이 두려워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하였죠..

 

 

그리고 몇 일 후 영월에서 호장(통장, 이장)을 지내던 엄흥도란 사람이 밤에 몰래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노루가 알려 준 자리에 무덤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고 단종의 아픈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강원도 영월로 부임하는 사또 (영월군수)가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7명씩이나 죽게 됩니다.

 

 

사유를 알아보니 밤마다 죽은 사람의 혼령이 나타나 신임 군수 들이 죽게 된 것입니다.

 

 

이후 모든 관리들이 영월군수 자리를 거절하게 되고 결국 영월군이 피폐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 고양출신의 박충원이 자원하여 영월 군수로 부임하게 되었지요..

 

 

부임 한지 며칠 후 한 밤중에 박충원 사또가 자고 있는 방에 혼령이 나타났습니다.

 

 

놀란 박충원이 혼령과 대화해 보니 억울하게 죽은 단종대왕 이였습니다.

 

 

단종의 말은 엄흥도가 임시로 무덤을 써서 산속에 버려져 있는데 너무도 춥고 외로우니 시신을 찾아내서 정식 무덤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였습니다.

 

 

아침이 되어 박충원이 일어나 보니 노루 한 마리가 마당에 있었고 그 노루를 따라 가 보니 암매장 되어 있던 어린 단종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박충원은 관리들과 함께 시신을 찾아내어 간단히 장례를 지내고 왕에게 보고하여 능의 규모로 무덤을 꾸미니 지금의 장릉입니다.

 

 

이러한 공적이 인정되어 박충원 선생의 공적비가 영월 장릉 입구에 서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