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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문화유산 | 중국으로 가는 길목, 의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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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0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조선 후기의 인물, 김지남 묘

지정번호 : 향토문화재 제51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95-5

김지남의 묘소는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숫돌고개 동쪽, 우봉 김씨 묘역내에 자리해 있으며

김지남의 묘소에는 상석, 향로석이 배치되어 있고 특히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묘비는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에는 숙종대에 백두산에 올라 중국 청나라 사신들과 담판을 지어

그 영토를 명확히 한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지요.

묘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임진년(1712)에 강의황제가 목극등을 보내 북변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조양가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걱정이 많았다.

접반사 박권 공이 임금께 아뢰어 공을 대행하게 하였는데

불초도 수행하였다.

목극등이 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압록강 동쪽과 두만강 서쪽 6,7백리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서로 국경을 넘기 때문에 심사해서 정하라는 조칙을 내리셨다' 라고 하였다.

공이 대답하여 말하길 '두 강은 참으로 한계가 되고 그 남상의 근원지로부터는 이미 강역의 아래가 되어

이것 역시 물길이 된 것이니 그 흐름이 비록 크지만 논하기엔 부족하다.' 라고 하였다.

분별함이 매우 확실하므로 목극등이 따랐다.

드디어 백두산 정상의 담수가 나오는 곳에 돌을 세워 경계를 정하였으니 그 배척함이 대개 멀었다.>

왕조실록과 같은 문헌기록에는 백두산 정계비와 관련한 기록을 다수 볼 수 있으나

무덤의 비석 중 정계비를 세웠다는 내용은 매우 드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지남은 조선조 후기의 역관으로 본관은 우봉(牛蜂), 자는 계명(季明)이며, 호는 광천(廣川)입니다.

1671년(현종12) 역과에 급제하여 역관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화약을 만드는 방법인 자초법(화약을 만드는 흙을 달이는 법)을 비롯하여 신전자초방, 통문관지 등을 저술했습니다.

 김지남은 역관으로, 외교가로 조선조 후기에 뛰어난 공적을 남긴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