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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문화유산 | 중국으로 가는 길목, 의주길

5020년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고양가와지볍씨부터 세계적인 명산 북한산을 비롯해 세계문화유산인 서오릉과 서삼릉 등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습니다. 고양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소중한 고양의 문화유산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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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의 문화유산을 만나다
 
 

2017-03-20

고양 역사의 중심지 의주로, 벽제관지

지정번호 : 사적 144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55-1

덕양구 고양동에 위치한 벽제관지는 고양향교, 향교골 은행나무와 함께 이 지역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입니다.

지명을 고(高)양동이라 하는 것도 1625년부터 1914년까지 289년간

고양군청과 벽제관과 같은 중요한 공공기관이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고양동은 파주, 양주, 고양지역이 만나는 곳으로 옛부터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과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연결하는 곳이었으며

중국의 사신과 우리나라의 고위관리 등이 자주 지나는 경의대로의 중심 건물이 벽제관이었습니다. 

벽제관지는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위치한 객관(客館)이며, 벽제관지는 서울과 의주, 중국까지 연결되는 의주로,

연경로의 경로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선조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1428번 중수, 1625년 이전 및 보수 등

비교적 옛 기록에 잘 남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조명 연합군과 일본군의 벽제관 전투로 유명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전의 사진을 보면 앞 옆은 마루, 가운데는 방으로 이루어졌고

정청 (본청) 앞에 삼문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몇 차례에 걸친 조사로 유구의 면적과 기능은 확인되었습니다.

벽제관은 사신영접의 기능 이외에도 고양군수가 전패와 궐패를 모시고 임금께 예를 올리는 장소였으며

외부에서 온 관리나 손님이 머물렀던 숙박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지방 소송에 대하여 재판하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벽제관은 인근에 조선시대 왕릉이 있어 이곳을 임시 궁궐인 행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1918년 당시 일본 총독인 데라우치는 벽제관의 부속건물인 육각정 (육모정)은 일본으로 가져갔으며,

한국 전쟁 등을 거치면서 크게 훼손되어 현재는 주춧돌과 기단석 등 그 터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